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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

안정복은 지역학의 선구자였다

새로 배우는 충남學

2021.06.25(금) 11:58:3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안정복은지역학의선구자였다 1


목천현 현감 부임해 읍지 편찬
역사 경제 풍속 인구 등 수록
정체성 확립한 지역학 총서

 
지역학의 출발은 해당 지역을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노력은 일찍이 조선후기 실학사상과도 맥이 닿아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대표적 실학자인 순암 안정복이 있다.

조선시대 안정복은 65세 늦은 나이인 1776년에 목천현 현감(지금의 천안 목천읍 지역)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목민서인 ‘임관정요’를 저술하고 자신의 목민사상을 목천지역에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또 지역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읍지(邑誌) 편찬의 중요성도 인식하였다.

원래 읍지는 중앙이 주도하여 지리지 형식으로 편찬되던 것이 당시의 통례였다. 그러나 안정복은 지역의 관점에서 보다 더 객관적이며 실증적으로 지역 실정에 맞는 읍지를 편찬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조선시대 최고의 지역학 전문가였다.

조선시대 수령은 국왕을 대신하여 지역의 역사, 강역, 경제, 풍속, 산천, 토산, 인물 등 제반 사항을 사실적이고 정확히 파악해 할 임무가 있었다.

안정복은 현감으로 부임하자마자 이를 위해 지역의 주요 인사들과 협력해 통일신라시대 목천 지역의 지명인 대록의 명칭을 딴 ‘대록지(大麓誌)’를 편찬하였다.

대록지에는 목천의 연혁, 재정 상황, 인구 및 장정의 수, 토지 면적, 군사, 인물과 유력인사, 학교, 풍속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일종의 지역학 총서인 셈이다.

안정복의 지역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지역학 관점에서 보아도 목천의 과거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또한 현재의 실상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미래적 관점에서 볼 때 지역학 선구자였다.
/심재권 나사렛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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