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오천의 충청수영성(보령 9 경)은 조선 초기부터 고종 33년(1896)까지 운영되었고, 그 규모는 군선 142척과 수군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수영은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으며,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길게 늘어선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서문 밖은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충청수영성의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영보정’은 고풍스러운 멋을 담은 천하절경이다. 영보정(永保亭)은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천험(天險)에 의지해 나라를 보존하고, 경관의 풍류 또한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세상에서 호수·바위·정자·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을 으뜸으로 꼽는다”라고 했을 정도로 극찬을 받아왔던 누각이다.
영보정 위에서 바라보는 오천항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호수 같은 바다, 활짝 트인 경치를 자랑하는 미항이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해서 방파제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인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 주요 어항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 키조개 생산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