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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신리성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62-3

2024.01.29(월) 00:38:29 | 김지은이 (이메일주소:whendeparture@naver.com
               	whendeparture@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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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
월요일 휴무(성지 외부는 관람 가능)
천주교인이 아니라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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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미술관에 와있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다른 계절마다 다르겠지만 차가운 겨울과 꽤 어울리는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당진 신리성지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소문나 있다.
나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신리성지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어 이렇게 찾아가게 되었다.

성지 주변엔 논과 밭이 전부다. 이곳이 왜 천주교 성지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신리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다블뤼 주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충청남도 서해안 일대를 부르는 내포지역이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어떤 곳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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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의 다블뤼 주교는 누구인가?
다블뤼 주교는 프랑스인이다. 귀족이며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신앙을 위해 그것을 포기했다. 프랑스에서 신부가 되고 극동지역 선교사로 임명받으며 아시아로 오게 된다. 상해에서 서품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21년 동안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우리나라 천주교의 기초를 세웠다. 자세한 업적은 생략했다.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천주교인들이 두려움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와 신자를 보호하고자 피하지 않고 스스로 자수해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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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가 부유한 귀족이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신부가 되어 먼 동방의 나라에서 스스로 순교를 선택했다는 것에 놀랐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솔직히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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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뤼 주교가 순교하고 그 다음 해 프랑스에선 그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한 미사가 거행되었다. 조선이라는 당시 프랑스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나라에서 존경받는 신부가 죽었으니 당시 프랑스인들이 갖는 상실감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반대로 현대의 우리가 자신의 종교가 아니라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신부님이나 스님 같은 종교인이 다른 나라에서 처형되었다면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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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곳 내포지역엔 천주교인이 많았나?
신리라는 지역의 지리적 특징이 중요하다. 내포 지방은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아산을 육지 깊숙이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는 안쪽에 자리 잡은 포구란 말이다. 서양 국가에서 보낸 천주교 선교 물품들이 내포를 통해 들어왔다. 또 다블뤼 주교와 김대건 신부처럼 선교사들이 이곳 내포로 조선에 도착했다. 또 이곳은 한양이랑 거리가 멀고 농사만 짓는 곳이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다. 관심 밖인 지역이라 천주교인들이 활동하기 수월했다. 내포지역엔 천주교인이 특히 많았을 뿐 아니라 이곳 신리는 주민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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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 성지 내 작은 초가집이 보인다. 그곳이 다블뤼 주교관이다. 한국인 천주교 신자인 손자선(토마스)의 생가로 주교가 이 집에 숨어 생활하며 저서를 쓰고 선교활동을 하던 곳이다. 바닥을 보면 구들돌이 한쪽이 비었다. 그 빈 곳에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 지하 공간이 다블뤼 주교가 숨어있던 공간이다. 이 작은 초가집과 지하공간이 한국 천주교에서 중요한 의미가 되었고 이곳이 성지로 불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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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카타콤바 신리성지 그리고 미술관
카타콤은 단순히 말하면 지하 무덤을 말한다. 특히 로마에 많았다. 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할 때 피난처가 되었는데 그래서 비밀 교회라고 불렸다. 신리성지의 다른 별명은 조선의 카타콤바이다. 신리성지 미술관은 지하에 있어 카타콤바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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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리성지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성지 내 미술관의 그림을 보고 싶어서다. 미술관은 성지에 가장 눈에 띄는 탑의 지하에 있다. 하지만 내가 찾은 날은 월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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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월요일에 쉬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곳 신리성지도 월요일은 쉬었다. 뿐만 아니라 카페도 쉰다. 날씨가 좋은 월요일에 신리성지 외부만 구경하고 며칠 뒤 다시 찾았다. 다시 찾은 날은 비가 왔다. 난 미술관만 보면 됐기에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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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그림은 다블뤼 주교가 조선에 오고 활동하다 붙잡혀 처형될 때까지 그 일대기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었다. 그림을 보면 생각보다 눈에 익은 화풍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가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이종상 화백이다.

그가 그린 그림은 한국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그림이다.
바로 오만원권 지폐의 신사임당이다. 그리고 오천원권 율곡이이도 그렸다.
그림체가 눈에 익숙해서 그런 걸까? 이곳 그림은 보기 편하고 스토리가 있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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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탑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다. 그리고 독특한 건물이란 걸 알 수 있다. 계단이 옆으로 밀려있다. 위에서 바닥까지 아래서 천장까지 한 번에 볼 수 없게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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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내 카페는 최근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실내에 들어가면 천주교 성지가 아닌 것 같은 서울의 어느 힙한 카페 같은 분위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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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곳에 와 한국 천주교 역사를 조금 알게 돼서 좋았다. 한국 천주교 역사는 박해로 인해 잔혹하다. 얼마 전 홍성의 홍주성지도 그랬고 이곳도 그렇다. 날이 조금 따뜻해지고 땅에서 풀이 자라 초록초록해지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당진에서 어디 가야 할까? 생각되면 신리성지 찾아가 보길 추천한다. 현대 미술관처럼 분위기 있는 장소이고 실제 미술관도 있다.


신리성지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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