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기념관 '추사예찬'전시회와 추사고택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이제 여름이 가을이 깊어가면서 향기롭고 그윽한 가을 소식이 전해옵니다.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부근에도 천천히 가을이 내려앉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이번 가을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각종 전시회도 열립니다, 가을을 맞아 예산군에 있는 추사기념관에서는 ‘추사 예찬’을 주제로 한 추사 김정희 선생 유물 중 개인 소장품으로 구성된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데 시선, 안목, 문예, 감상, 일상과 수집을 주제로 구성되어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서 수집에 이르기까지 전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이번 전시에는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작품을 비롯하여 20 여 점의 유물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소장자 8명의 진귀한 유물을 추사의 고장 예산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이번 관람을 통해서 추사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11월 26일까지 이어집니다. 1층 로비에는 옛 추사고택 사진이 전시되어있으니 함께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그리고 1층 전시실에는 추사의 삶과 예술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석학의 일인자가 되기까지 중국의 완원이나 옹방강 등 스승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부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는 것도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도 전시되어있고 심훈가에서 기부한 김정희의 글씨인 ‘靑蓮詩境(청년시경)’ 편액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예산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곳이 바로 추사의 체취가 배인 유적지입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로비 한쪽에는 추사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머그잔과 찻잔이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추사기념관과 추사고택 방문 기념으로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참 좋습니다. 물론 다양한 다른 것들도 있으니 선택해서 사도 좋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고택, 추사기념관, 백송, 화암사와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 문까지 추사가와 추사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추사고택은 예산 제3경으로 지정이 되어 예산에서 끊이지 않고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 중 한 곳입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후손으로 병조판서 김노경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가 되어 대를 이었습니다. 김정희는 순조 1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나 예조 참의 그리고 설서 등 많은 직책을 맡아서 일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러하듯이 권력에는 늘 시기가 있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조의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로 복직되었고, 김정희 또한 1836년에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김정희의 삶이 23세까지가 학문과 인격을 닦은 성장기였다면 24세에서 54세까지는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4세 때 아버지를 따라서 청나라에 갈 때 함께 가서 연경에 머물면서,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 같은 유명한 유학자를 만났는데 그의 학문이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55세 이후는 시련의 시기였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그의 추사체는 9년 동안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글씨체인데 유배지의 외로운 유배 생활 중에서도 추사체를 완성하여 조선 서예사의 한 장을 완결하였습니다. 또한, 제주도에서 완성한 「세한도 歲寒圖」는 김정희가 그의 제자 이상적의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 그려 준 그림입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그러나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할 때 그는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가 귀양이 풀려 돌아왔으나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고 2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 돌아왔으나 정계에는 복귀하지 못하였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그는 말년을 그의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머물며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였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과천에 안장되어 있던 것을 1937년 이곳 예산 추사고택 옆으로 이장하였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김정희의 삶이 23세까지가 학문과 인격을 닦은 성장기였다면 24세에서 54세까지는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24세 때 아버지를 따라서 청나라에 갈 때 함께 가서 연경에 머물면서,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 같은 유명한 유학자를 만났는데 그의 학문이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55세 이후는 시련의 시기였고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그의 추사체는 8년 동안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글씨체인데 유배지의 외로운 유배 생활 중에서도 추사체를 완성하여 조선 서예사의 한 장을 완결하였다. 또한 제주도에서 완성한 「세한도 歲寒圖」는 김정희가 그의 제자 이상적의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 그려 준 그림이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고택의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집을 만나게 됩니다. 안에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채는 ㄱ자로 되어있고 안채에는 여섯 칸 대청과 두 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입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채 마루에 앉아서 돌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 사랑채 안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잠시 머물면서 추사의 삶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시를 서각해서 병풍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 있어 이곳이 새로운 포토존이 되고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사랑채 앞뜰의 한 무더기 모란 옆에는 석년(石年)이라 길게 음각된 석주가 서 있는데 추사가 직접 만들었다는 해시계입니다. 그리고 석년이라는 글씨는 추사의 아들 상우가 추사체로 썼습니다. 뒤편에는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지은 영당이 있고 옆에는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고택 바로 앞 도로를 건너 추사체험관이 있습니다. ‘추사체 써 보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각종 체험을 하면서 추사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도 참 좋습니다. 추사고택에는 아름다운 꽃도 피어나고 감도 붉게 익어가고 있어 가을을 느끼게 해줍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이번 가을에 예산여행을 할 예정이라면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추사 유적지에서 추사 관련 관광지를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특히 예산시장과 예당호 출렁다리와 예당호 모노레일 등을 함께 돌아보면 더 멋진 예산여행이 될 것입니다.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추사고택
주소 :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49
전화번호 : 041-339-8248
▲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