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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키울 때 인성교육 열심히… 인성 되면 학력은 저절로”

신암 조곡리 이태호 어르신, 아들·며느리 딸·사위에 손자까지 박사학위 “아침마다 명심보감 틀어줘… 논어·중용 읽으면 양심적으로 살게 돼”

2023.01.16(월) 10:23:07 | 무한정보신문 (이메일주소:fuco21@daum.net
               	fuco21@daum.net)

이태호 어르신이 큰아들과 차녀(셋째)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여주며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 이태호 어르신이 큰아들과 차녀(셋째)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여주며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서로 얼굴을 맞대 떡국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흥겨운 음악처럼 들리는 날, 바로 ‘설’이다. 온 가족이 함께 누리는 행복과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법이다.

새해를 맞은 신암 조곡리 이태호(85) 어르신 댁에 손자가 포항공대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마을 주민들은 가장 잘 보이는 도로에 축하 펼침막을 내걸어 내 일처럼 기뻐했다. 고마운 마음에 수덕사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한 뒤 며칠이 지나 지역신문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손자가 박사가 됐어. 우리 가족에 박사만 5명이 나왔는데, 이런 소식도 전할 수 있을지 몰라 연락해보는 거여” 그는 <무한정보>가 지난 2011년 73세 나이로 한자능력자격시험 1급을 취득한 것이 화제가 돼 소개한 주인공이다.

2남 4녀를 출가시키고 아내와 함께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은 “한 번에 붙은 것은 아니고, 세 번 도전해 성공했다. 그때 얼마나 공부했던지 귀에서 이명이 생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박사학위를 가져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여기에 손자 이홍근씨까지 ‘박사가족’이 한명 더 늘었다. “둘째인 큰아들이 박사, 며느리는 교장이다. 셋째는 딸인데 교육학박사다. 사위도 박사다. 교사인 여섯째 아들은 며느리가 교육학박사이면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박사만 4명, 8명은 교사다. 이번에 첫째 아들 손자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우리 집안에 박사만 5명이 나왔다”고 가족 사랑, 자녀 자랑이 이어진다.

그는 1939년 조곡리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8살에 신암초등학교를 입학해 졸업한 뒤 예산중학교를 다닐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3년 늦은 1954년 졸업했다(8회).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는 가지 못했다. 이후 평생을 고향에서 벼, 사과 농사를 지으며 자녀들을 키워냈다.

고희 잔치에 모인 가족들. ⓒ 무한정보신문

▲ 고희 잔치에 모인 가족들. ⓒ 무한정보신문


어르신은 “대신 구한문을 많이 읽었다”며 어려서부터 서당 선생님에게 한문을 배운 사연을 들려줬다. “당시 향교에서도 공부할 수 있었지만 동네마다 서당이 있었다. 아버님께서 우리 마을에 서당 선생님을 모셨다. 이학복 선생님이다. 10명 남짓한 마을 아이들이 서당 선생님으로부터 한문을 사사받았다. 천자문부터 동문선습,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시전 10권, 서전 10권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고 한다. 

12년 전 합격한 한자능력자격증 1급. ⓒ 무한정보신문

▲ 12년 전 합격한 한자능력자격증 1급. ⓒ 무한정보신문


말이 한문공부지, 사실상 한학에 가까운 내용이다. 제자들은 아침을 먹은 뒤 서당에 모여 선생님이 고전에서 적당한 문장을 골라 읽는 법을 알려주고 의미를 해석해주면 집에 와서도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면서 하루종일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가 이뤄졌다. “학생들의 학습능력에 차이가 있어 선생님은 재주 있는 아이들에게는 많이, 재주없는 아이들에게는 적게 학습분량을 줬다” 지금으로 보면 ‘학생 맞춤형 교육’이다.

그는 “대학, 중용, 논어 같은 책을 한번 읽고 나니 도둑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금 보면 장관하는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징역 간다. 나도 군대 가서 남 따라 수건을 몰래 챙기기도 했는데, 대학·중용을 읽고 나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배운 지식은 지혜가 돼 삶을 올곧게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됐다. 자녀들이 방학을 하면 서당에서 배운 대로 한문, 천자문, 명심보감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배움을 통한 깨달음으로 자녀들을 교육자로, 또 박사로 성장시켰다. “내가 대학도 못간 게 한이었다. 평생 농사짓고 살았지만 자녀들에게 바른 심성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읽고 해석한 명심보감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아침마다 틀어줬다.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어렸을 때 명심보감만큼은 잘 알아들었다”

어르신이 머리 좋은 딸로 기억하는 4녀(다섯째) 이인선씨가 공주사범대 한문교육과를 진학해 한문교사가 된 배경도 단순하지만 특별했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다. “솔직히 자식들이 이렇게 잘 클 줄은 예상하진 못했다. 한문을 가르치고 토마스 제퍼슨이 아들에게 전한 명언 등을 일러줬을 뿐”이라며 “큰아들이 열심히 하니까 동생들도 본받아 열심히 한 것 같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자식 키울 때 인성교육을 열심히 했다. 인성이 되면 학력은 저절로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이 50에 시작한 서예, 지금은 다른 이들을 지도하는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 나이 50에 시작한 서예, 지금은 다른 이들을 지도하는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그는 나이 50에 붓을 잡기 시작해 홍성 장강서예학원과 예산문화원에서 서예를 배웠다. △매헌문화제 제24회 금상 △서예국전학원전 3회 입선 △예산군노인회 서예전 최우수상 △서예추사전 3회 입선 △자암전 5회 입선을 거쳐 2017년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로 전시회를 여는 등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향학열로 서예실력을 선보였다. 또 신례원·오가·신암초등학교에서 한문강사로 초빙해 학생들에게 한문과 서예를 가르쳤다. 지금도 예산문화원과 예산농협에서 서예를 지도하며 붓을 잡고 있다. “몇 년 전 배웠던 컴퓨터 한글문서 작성법을 자꾸 잊어버려 복지관에서 가끔 컴퓨터 수업을 듣는다”며 식지 않는 학구열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무한정보> 독자들을 위해 설날 인사를 청했다. “중용의 덕목과 공자의 도는 내 안의 양심을 잘 믿는 것이다. 

공자는 허례허식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양심껏 허례허식 없이 살아야 한다. 효도하고 성심껏 조상 위하면서 정성껏 내 양심 잘 지키고 살면 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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