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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감자는 고구마의 충청말

이명재의 농업 관련 충청 사투리- 감자

2022.03.31(목) 08:46:29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감자는고구마의충청말 1



“감자는 서리 오기 전이 얼릉 캐야 혀. 얼믄 바루 썩넌다니께.”

‘감자’는 지금의 ‘고구마’다. 충청도에서는 그 옛날부터 고구마를 ‘감자’라 썼다. 해방 이후 충청도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표준어 ‘고구마’를 배웠다. 그러면서 이 말이 퍼져나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충청도 사람 대부분이 ‘고구마’라 하게 되었다. 

고구마는 따뜻한 기후에서 재배되는 구황식물이다. 구황식물은 배곯는 백성을 구해주는 작물이란 뜻의 말이다. 고구마는 소출이 많았다. 다른 작물을 심었을 때와 비교하면 2~3배 이상이었다. 그래서 배고픈 백성들은 밭마다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는 따뜻한 기후 작물이기 때문에 서리를 맞으면 죽었다. 영하로 떨어지면 바로 썩었다. 그래서 충청의 백성들은 서리 때면 고구마를 캐어 방안으로 들였다. 방안 한구석에 볏짚을 엮어 ‘감자통가리’를 두었다. ‘감자통가리’는 고구마를 쟁여두는 저장고였다. 

감자통가리의 고구마는 겨울철 양식이었다. 쌀과 잡곡이 부족한 예전에는 점심거리가 없었다. 충청의 백성들은 고구마를 쪄 점심을 대신했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을 데우고 고구마를 까먹으며 떠먹는 동치미 멀국은 허기진 배를 시원하게 채워주었다.   
   ‘고구마’는 일본말 ‘고쿠이모’에서 온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고구마를 재배한 역사는 200년에 넘지 않는다. 250년 전, 일본에 다녀오던 사신들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왔다. 

이후 서울에 ‘고구마’란 말이 퍼졌다. 해방 이후 1933년 만들어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서울말을 기준으로 표준어가 제정되었다. 이에 충청말 ‘감자’는 사투리가 되고 말았다. 
/이명재 충청언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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