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이름 모를 순교자의 발자국을 따라서

내포문화숲길, 마음으로 걷다 - 내포천주교순례길 4코스

2022.03.16(수) 22:15:4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한티 고갯마루에 설치한 야외 제대와 압송 장면을 담은 조형물

▲ 한티 고갯마루에 설치한 야외 제대와 압송 장면을 담은 조형물



신자들이 죽음 각오하고 
넘어갔을 한티 고갯마루
굽이진 민초의 삶을 상징 


오늘 걸을 내포천주교순례길 4코스는 ‘순교자의 길’로 불립니다. 예산 충의사에서 시작해 한티고개를 넘어 서산 해미순교성지(여숫골성지)에 이르는 길입니다. 

내포천주교순례길 대부분이 평평한 들길이지만 4코스는 가야산자락 굽이진 고개를 넘는 고갯길입니다.

바닷가 저습지를 간척해서 살던 농민. 포구와 시장이 터전인 상인과 뱃사람 등 내포 민중 사이로 들불처럼 번져 나간 천주교는 한순간 지나가는 열기가 아녔습니다. 

바람 부는 척박한 바닷가 모래땅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군락을 이루는 순비기나무처럼, 천주교인들은 신앙공동체를 일궈 박해를 견뎠으며 곳곳에 뿌리내리며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천주교 박해는 18세기 말부터 100년 넘게 계속됐습니다. 

평야 지대에 있던 교우촌 대부분이 파괴됐고, 많은 신자가 체포돼 순교했습니다. 

대부분 내포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던 홍주읍성과 해미읍성으로 끌려가 처형됐습니다. 

‘순교자의 길’이 바로 천주교 신자들이 해미읍성으로 끌려가던 길입니다. 

해미읍성의 옥사 앞 회화나무와 서문 밖 자리 갯돌은 당시 천주교인이 받았던 모진 고문과 처형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해미순교성지 여숫골은 천주교인을 산 채로 매장하던 곳입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순교한 이들이 천여 명이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민초의 삶을 닮은 내포의 천주교는 박해 속에서 더 강한 생명력을 얻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옵니다. 

한티 고갯마루에서 땀을 식히면서 참된 신앙의 본보기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 이 고개를 넘었을 무명의 순교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유병덕(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 책임연구원)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도정신문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