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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이정록 시인의 서랍

2022.03.16(수) 21:59:3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를 얻어오너라
원추리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진물 위에 흙 한 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 온 나뭇가지가 채찍이 되지 않도록

『정말』 창비


나뭇가지를얻어쓰려거든 1



사람을 얻어 쓰려거든, 어찌해야 할까?

“먼저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응달진 가슴 속 얼음이 녹을 수 있도록 체온을 건네야겠지/ 일이 손에 익기 전에 서툰 웃음부터 나눠야겠지/ 웃음꽃이 필 때까지, 조심스러운 침묵을 억지로 까발리지 말아야겠지/ 언제든지 갈 테면 가라고 호통치지 말아야겠지/ 누구나 상처로 만든 속주머니가 있는 법, 그 둥우리에서/ 새끼 새가 부화할 때까지 든든한 나뭇가지가 되어주어야겠지/ 그림자와 그림자가 진하게 겹쳐질 때까지/ 말 못 할 섭섭함에 성에가 잡히지 않도록/ 당신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부르르 떨지 않도록”

고성 바닷가에 다녀왔다. 모래펄에 박혀 있는 막대기 한 자루를 주워왔다. 이제 바다에 갈 때마다 파도에 닳은 나무토막을 주워오려고 한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파도에 살을 내준 자리엔 여지없이 나무의 뼈가 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숨결로 태어나서 나에게 몸짓을 건넨다. 여러 생각 끝에 나도 목판화를 해볼까? 욕심내는 중이다. 바닷물에 떠돌다가 모래펄을 무덤 삼은 나뭇가지들을 주워와서 그것들을 품에 넣고 어루만진다. 나무들이 칼질을 허락하면 그때에는 나무의 살결과 핏줄과 뼈마디를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 ‘너는 종이하고만 놀아라.’하고 타이르면, 나는 기꺼이 나무의 말을 잘 듣겠다. 지금은 바닷가에서 떠돌던 흰 나뭇가지를 젖배 곯은 아이처럼 오래 주무르고 빨아댈 뿐이다. 때로 그 우주의 작은 뼈마디가, 내 등을 긁어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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