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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윤봉길기념관 특별전

윤봉길의사 김구선생을 다시 만나다

2021.12.20(월) 23:56:51 | 이병헌 (이메일주소:ichmount@naver.com
               	ichmount@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지난 12월 19일은 윤봉길의사가 순국한지 89주기 되는 날 이었다. 이날부터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는 ‘윤봉길의 김구선생을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왼쪽 윤봉길의사기념관으로 가는 길 옆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1~2분만 가면 기념관에 도착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내데스크가 있고 왼쪽으로 특별 전시실이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입구에 태극기 그림 아래에 왼쪽에 김구선생이 오른쪽에 윤봉길의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데스크에 방명록이 있고 느낌을 적어서 나무에 매달도록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윤봉길의사의 어록 몇 개가 전시되고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는 1908년 덕산면 시량리에서 테어나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노예교육을 배격하면서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 뒤 한학을 공부했으며, 오치서숙에서 사서삼경 등 중국 고전을 익혔다. 1926년 서숙생활을 마치고 농민계몽·농촌부흥운동·독서회운동 등으로 농촌 부흥에 전력하였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농민독본(農民讀本)』을 저술하고, 야학회를 조직해 향리의 불우한 청소년을 가르쳤다. 1929년 부흥원을 설립해 농촌부흥운동을 본격화했다. 1930년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신념이 가득 찬 편지를 남기고 채 3월 6일 만주로 망명하였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해 김구의 주관 하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소앙(趙素昻) 등의 협의와 동의 아래 4월 29일 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하였다.

윤봉길기념관특별전 1
▲ 윤봉길의사기념관

4월 29일 폭탄을 식장에 던져 상하이 파견군 시리카와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켰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공사 시게마쓰, 총영사 무라이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윤의사는 거사 직후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한국애국단에 가입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고 그는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 일원이 되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5월 26일 선서인 윤봉길”의 선서문이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1932년 4월 29일 일어난 일이 그림과 설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구선생과 시계를 맞바꾸고, 삼엄한 경비를 뚫고 홍커우공원으로 잠입하고, 폭탄을 투척한 후 체포되는 윤봉길의 모습을 전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이 쉽게 그날의 의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이곳에는 윤봉길의 판결서, 사체검안서사본과 그날의 사진 그 당시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김구선생이 윤봉길을 추모하는 모습의 사진, 김구 유묵(鐵血精神), 『도왜실기』 그리고 『백범일지』가 전시중이다. 윤 의사와 김구 선생이 교환했던 회중시계도 한자리에 함께 전시하고 있는데 복제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서상한을 대표로 한 임시정부유해발굴단이 1946년 3월 2일 가나자와에 도착해서 재일조선인연맹 청년들과 만나 유해발굴을 시작해 그해 3월 6일 발굴되었다. 6월 15일유해가 부산에 도착해서 ‘순국 삼의사 추도회’를 거행했고, 6월 16일 ‘조선해방자호’특별열차편으로 서울봉안해서 태고사(현조계사)에 도착을 했다. 7월 6일에 효청원에서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이곳에는 이시영, 매곡 성주록, 심산 김창숙 그리고 윤석오 서생 추도문이 있다. “태사 문숙공(윤관) 문강동(윤언이)의 후예는 호서의 예산과 노성 땅에 널리 살고 있으니, 평일 경모하는 정성이 타인보다 배는 더했고, 지금 이 전시 유물을 감상함에 저절로 숙연히 공경함이 일어난다. 아, 서생의 위훈과 위열이 천지와 더불어 무궁할지어다. 종말 석오 근제”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의 유서와 이력서 그리고 한인애국단에 대한 게시물이 있어 이해를 더하게 해준다. 이곳을 돌아본 후에 전시실에서 윤봉길의사의 삶과 애국정신을 돌아보아도 좋다. 그가 사용하던 식기류와 그의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충의사
▲ 충의사

이곳에 나와서 계단을 올라가면 충의사가 있으니 참배를 하고 내려오면서 부인인 배용순여사의 묘에 들려보아도 좋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집인 광현당과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성장한 집인 저한당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배용순여사묘
▲ 배용순여사묘

이 전시회는 내년 2월 20일까지 윤봉길의사기념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다.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기념관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전화 : 041-339-8233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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