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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1500년 전 백제, 세계인의 유산이 되다

`찬란한 유산, 어게인 백제로'

2021.08.24(화) 21:26:1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과 왕릉원) - 웅진시대의 백제왕실의 능묘군이며, 백제 왕릉 혹은 무령왕릉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과 왕릉원) - 웅진시대의 백제왕실의 능묘군이며, 백제 왕릉 혹은 무령왕릉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1500년전백제세계인의유산이되다 1
‘찬란한 유산, 어게인(AGAIN) 백제로’를 주제로 2021 세계유산 축전이 8월 29일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백제역사유적의문화적 우수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충남의 공주(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은 2015년 백제문화 연속 유산으로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1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들 유산은 각각 웅진시대(공주·475~538년)와 사비시대(부여·538~660년)를 대표하며, 이웃 지역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문화 전성기’를 맞았던 고대 백제 왕국의 후기 시대의 위용을 가늠케 한다.

특히 이곳에서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 등 백제가 수용하고 발전시킨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세련된 백제문화를 일본과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수도의 입지, 불교 사찰과 고분, 건축학적 특징과 석탑 등은 백제 왕국의 고유한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다.
/도정신문팀

 

공주 공산성 -백제가 웅진에 수도를 두었던 475년부터 부여로 천도하는 538년까지 약 63년간 웅진성이라 불렸다.

공주 공산성 -백제가 웅진에 수도를 두었던 475년부터 부여로 천도하는 538년까지 63년간 웅진성이라 불렸다.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 부여에서 왕궁이 입지하기에 가장 좋은 지형으로, 백제 왕성구조에 대한 비밀을 품고 있다.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 부여에서 왕궁이 입지하기에 가장 좋은 지형으로, 백제 왕성구조에 대한 비밀을 품고 있다.


부여 정림사지 - 사적 제301호로 백제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세워졌다.

부여 정림사지 - 사적 제301호로 백제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세워졌다.


부여 나성 -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외곽성으로,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부여 나성 -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외곽성으로,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부여 능산리고분군(부여 왕릉원) - 납작천장식돌방무덤·굴식천장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백제 왕국의 무덤군

부여 능산리고분군(부여 왕릉원) - 납작천장식돌방무덤·굴식천장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백제 왕국의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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