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과의 주름살
이정록 시인의 서랍
2021.08.17(화) 11:41:41 | 도정신문
(
scottju@korea.kr)
어물전 귀퉁이
못생긴 과일로 塔(탑)을 쌓는 노파
뱀 껍질이 풀잎을 쓰다듬듯,
얼마나 보듬었는지 풋사과의 얼굴이 빛난다
더 닳아서는 안 될 은이빨과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순전히
검버섯 때문에 사온 落果(낙과)
신트림의 입덧을 추억하는 아내가
떫은 핀잔을 늘어놓는다
식탁에서 냉장고 위로, 다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치이면서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에 과도를 댄다
버리기에 마음 편하도록 흠집을 만들다가
생각없이 과육을 찍어올린다
떫고 비렸던 맛 죄다 어디로 갔나
몸 안을 비워 단물 쟁여놨구나
가물가물 시들어가며 씨앗까지 빚었구나
생선 궤짝에 몸 기대고 있던 노파
깊은 주름살 그 안쪽,
가마솥에도 갱엿 쫄고 있을까
낙과로 구르다 시든 젖가슴
그 안쪽에도 사과씨 여물고 있을까
주름살이란 것
內部(내부)로 가는 길이구나
鳶(연) 살처럼, 內面(내면)을 버팅겨주는 힘줄이구나
‘풋사과의 주름살’ 문학동네
![풋사과의주름살 1](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10817/IM0001745584.jpg)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라는 시집이 출간되자, 아내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세놓고 싶다고 하지, 세 들고 싶다가 뭐냐고 샐쭉댔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팔아 봐야 오백만 원도 안 될 것이라면서 투덜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보잘것없음의 위대함에 주목한다. 내부로 가는 탯줄의 당당한 생명력과 내면을 팽팽하게 당기는 힘줄의 자존심을. 만물을 지키는 씨줄과 날줄의 따스한 관계를. 그 둥근 아름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