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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이시방 유적을 찾았어요

안내판에 오천쪽으로 6.5키로라고 쓰여 있어서 가보았더니...

2020.11.01(일) 23:14:16 | 솔바다 (이메일주소:jadoori@hanmail.net
               	jadoori@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시방 유적이 어디에 있어요?”,  
“이시방이 누구예요?”
 
지나면서 안내판에 있는 것을 보고 묻는 것이었다. 오천 쪽으로 6.5㎞라고 쓰여 있다. 평소 오천면 영보리 길을 지나다 보면 산자락 속에서 꽤 오래된 듯한 석물이 보이곤 하였는데, 혹시? 

그러잖아도 ‘언제 한 번 찾아봐야지‘ 했었는데 내친 김에 잘 됐다. 일정을 끝내고 나니 시간이 늦어져 서둘러 오천면 영보리 솟재로 달려갔다.
 
이시방신도비 이정표
▲'보령 충정공 이시방신도비'가 솟재길에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
 
마을 입구에 있는 오천면 영보리 표석
▲마을 입구에 있는 오천면 영보리 표석
 
소를 닮은 언덕이어서 솟재, 또는 우치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곧바로 보아오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문인석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비석을 보고 있자니 잠시 후 한 주민이, “어디에서 왔어요?” 묻는다.
 
“답사하러 왔어요.”
“누구를 찾으시는 거예요?”
“이시방 유적을 찾아 왔어요.”
“이시방할아버지는 저~쪽에 있어요.”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방금 보고 있던 것은 이시방할아버지의 아드님 묘역이었고, 이시방할아버지는 다른 곳에 계시다는 거였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보고 계시던 후손이라고 하는 어르신께  ‘혹시나’ 하며 같이 가자고 청을 하였더니 고맙게도 응해 주셨다. 당신 윗대 할아버지가 된다고 하시니 잘 되었다 싶기도 하였다.
 
충정공 이시방(1594~1660)은 호는 서봉이고 연안이씨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좌찬성 이귀(1557~1633)이고, 맏형 영의정을 지낸 이시백(1581~1660)을 비롯하여 이시담(1584~1665)과 누이가 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유생으로 아버지와 함께 가담한 공으로 정사공신에 봉해졌고,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아 반란군을 토벌하고 1625년(인조3) 서산군수가 되었다. 외에도 전라도 관찰사도 하였으나 남한산성의 위급을 구원하지 않았다는 죄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형인 영의정 이시백과 함께 대동법 시행에 앞장섰고, 제주목사·병조참판·호조참판·공조판서·형조판서 등 나라의 요직을 두루 맡아 활동하다가 남한산성을 개수 중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전한다. 아버지를 비롯해 아들들 역시 모두 요직들을 두루 역임하였다.
-한국콘덴츠진흥원 참조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1 
▲'충정이공시방지묘'가 눈에 들어온다
   
이시방묘소에 막상 오르니 그 후손과 같이 있었는데, 뒤로는 소나무 병풍이 아늑하게 둘러져 있고, 앞으로는 저 멀리 해안이 펼쳐져 마침 낙조와 어우러져 풍광이 그만이었다.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2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3
▲이시방 묘역의 등뒤에 서있는 아름다운 소나무와 후손이신 이문경어르신
 
좌청룡 우백호라고 할 수 있는 산자락이 잘 펼쳐진 곳에 낙조가 퍼지고 있는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문외한이 보아도  풍광 그 자체였다. 지인은 형세가 꼭 소의 모양이라고 하며 자리가 참 좋다고 하신다.
그 말씀은 살아 생전 떨친 업적이 지금도 빛나고 있는 것같이 들렸다.
 
멀리 서해가 보이는 탁트인 전경
▲멀리 낙조를 이루는 서해가 보이는 전경
 
후손이신 동행한 어르신도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살아 오시며 조상님 묘소를 관리하며 지켜오고 계셨는데, 이번 추석에도 깔끔하게 정리를 하셨다고 한다. 자리도 넓은 곳을 정성이 대단하셨다.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4
 
발걸음을 잡고 있는 문무석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5
▲발걸음을 잡고 있는 잘 생긴 문인석
  
묘 앞에서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향나무도 당당한 모습이었다. 수피를 보니 수난도 겪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오랜 동안 여러 일들을 잘 이겨내며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지킴이를 하는 당당한 향나무
▲지킴이를 역할의 당당한 향나무
 
풍상을 겪은 향나무
▲수피가 벗겨진 향나무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걸음을 재촉하였다. 제를 지내는 ‘연성재’도 들러보았다. 좌찬성 이귀와 함께 아들들인 영의정 이시백, 이시무, 이시방의 사진을 모셔놓고 있었다.
 
영정도 보고 위패도 보고 계보도 볼 수 있었다.

달이 뜨기 시작한 묘역에서
▲달이 뜨기 시작한 묘역
 
연안이씨의 '연'을 넣어 지은 연성재
▲연안이씨의 '연'을 넣은 연성재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6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7
  
아버지 이귀를 비롯한 이시백, 이시방 형제님들
▲아버지 이귀를 비롯한 이시백·이시방 형제, 좌로부터 이귀·이시백·이시담·이시방
 
이시방유적을찾았어요 8
▲모시고 있는 위패
 
17세기 인조반정이며 이괄의 난 등을 치뤄내며 나라를 위해 공헌을 한 공신이 보령 오천에서 잠들어 있었다. 동행하며 소중한 유적자원 안내해 주신 어르신께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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