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도와 윤봉길기념관에서 만나는 윤봉길 의사의 자취
▲ 야학당 부흥원
묘표사건으로 자극을 받아 문맹퇴치의 일환으로 협소한 저한당의 사랑방에서 운영해오던 야학당의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넓은 공간의 야학당을 건립하여 체계적인 야학과 농촌부흥운동 등 다발적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건립하였고 망명과 의거를 결심한 곳도 이곳이었다. 도중도에는 메헌 무궁화공원이 있는데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가 식재되어있고 요즘 꽃이 피어나 아름다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양각색의 무궁화를 보면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개울을 포함한 연 밭이 있어 여름에는 아름다운 연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늦여름에는 그것이 마치 윤의사의 붉은 정렬이 피어나는 것 같다.
▲ 윤봉길의사기념관
도중도에서 도로를 건너면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이곳에는 윤의사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아담한 단층 건물과 전통의 형식을 빌어서 지었다.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일생을 연대별로 그래프를 그려 설명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삶이 짧아서인지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과 유품이 많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 기념관의 윤봉길의사 의거장면
윤봉길 의사의 쾌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감격하였고 이로 인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성원하였다. 윤 의사는 그해 5월 25일 상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2월 19일 25세의 나이로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십자가 형틀에 매어 총살당했다.
▲ 윤봉길의사 흉상
윤봉길기념관을 나와 언덕을 올라가면 충의사가 있다. 이곳은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으로 이곳에 가면 묵념을 하여 예를 갖추면서 윤봉길의사의 애국정신을 기려야 한다. 단층의 단순한 건물이 오히려 더 가깝게 다가온다.
▲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탑
▲ 도중도 저한당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