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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중 제일 힘든 것이 모내기..올해는 풍년 되길”

뜨거운 태양볕 아래 모내기를 맞이한 농부의 모습

2024.06.04(화) 08:53:01 | 당진신문 (이메일주소:psychojys@daum.net
               	psychojys@daum.net)

김성구 농부의 아들과 손자는 이앙기에 모판을 계속해서 옮겼다.

▲ 김성구 농부의 아들과 손자는 이앙기에 모판을 계속해서 옮겼다.


매년 5월 하순이 되면 농부들은 한 해의 시작인 모내기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전국 각지의 농부들은 직접 관리하거나 육묘장에서 산 어린 모를 자신들의 논으로 옮겨야 하고, 논에는 어린 모들을 심을 준비를 위해 농수, 비료, 이앙기 등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 20일 오후 2시경, 무수리 일원에서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던 김성구(77세) 농부를 만났다. 김성구 농부는 모내기 철을 맞아 그의 아내인 이재희(76세) 씨와 아들, 손주 그리고 이재희 씨의 조카 이대선 씨와 같이 논에 심을 모판을 이앙기에 옮기고 있었다.

김성구 농부는 “오전 6시부터 나와서 계속 모내기를 진행하고 있다. 모내기의 시작은 모판을 옮기는 것부터 시작된다”며 “기존에 키워놨던 모들과 비료를 논에다가 옮겨놓고 모를 심어줄 이앙기도 끌고 와야 하고, 준비가 마무리되면 이앙기에 모판을 계속 싣고 나르고를 반복하고, 이앙기가 닿지 못한 공간에는 직접 손으로 심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김성구 농부 아내 이재희 씨, 손자, 김성구 농부.

▲ 왼쪽부터 김성구 농부 아내 이재희 씨, 손자, 김성구 농부.


이앙기에 모판을 다 옮기자 이대선 씨는 이앙기를 몰며 모를 심기 시작했다. 이앙기가 논의 끝에서 끝으로 지나가자 비어있던 논에는 어느새 모들이 한 줄로 가지런히 심겼고, 이앙기에 옮겼던 모판은 어느새 텅텅 비어있었다. 

김성구 씨의 아들과 손주는 다시 이앙기에 모판을 옮겼고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600평 남짓의 논에는 40분 정도가 지나자 파릇파릇한 모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았던 모내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김성구 농부와 이재희 씨는 이앙기가 닿지 못한 곳에 직접 모를 심었다. 그 당시 논의 농수는 종아리가 반쯤 잠길 정도였고 바닥은 질퍽거리는 진흙으로 돼있어 한번 발을 넣으면 잘 빠지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또한, 600평 남짓의 땅이 다가 아니였다. 김성구 농부는 현재 6000평의 논을 소유하고 있어 지금까지 했던 일을 대략 10번을 반복해야 했다.

이앙기가 들어서지 않는 곳은 김성구 농부와 가족들이 직접 모를 심었다.

▲ 이앙기가 들어서지 않는 곳은 김성구 농부와 가족들이 직접 모를 심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성구 농부는 “힘들지, 근데 힘들어도 먹고 살려면 해야지”라며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김성구 농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김성구 농부는 그의 조상 때부터 이어진 농사의 대를 잇고자 20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57년 동안 한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왔다고.

김성구 농부는 “조상 때부터 쭉 농사만 해왔다 보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나도 농사를 짓게 됐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농사만 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해서 자식도 있고, 손주도 벌써 군대에 갈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김성구 농부와 이재희씨는 무수리 일원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이들은 유곡초등학교가 유곡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니며 쭉 알고 지냈고, 23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하게 됐다.

이재희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로 지내다 20살이 될 무렵, 서울에 올라가 공장을 다니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 고향에 잠시 내려와 이 양반을 봤는데 어릴 적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며 “농사를 짓고 있는 이 양반의 모습을 보니 자기 가족 굶길 일은 없어 보였고, 믿음직해 보여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농사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다 보니, 허구한 날 지지고 볶고 싸우고 그러고 있다”며 미소를 지으며 모판을 마저 옮겼다.

모내기를 마친 후, 김성구 농부와 가족들은 준비한 새참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모내기를 마친 후, 김성구 농부와 가족들은 준비한 새참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성구 농부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6000평 기준 농사 소득은 약 1500만원이다. 하지만, 매년 약 1000만원 정도를 농자재값에 사용함에 따라 이들의 생활비는 약 500만원 정도다.

김성구 농부는 “1년 동안 힘들게 농사지어서 수확하고 미곡처리장에 파는데, 벼값을 제대로 쳐주질 않으니 날이 갈수록 농사는 어려워진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농부들도 농사 짓기 힘들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관두는 사람이 많다”고 한탄했다.

이어 “그러나 대부분 농부들은 힘들어도 관둘 수가 없다. 할 줄 아는 것이 농사짓는 것 말고는 없는데 망하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된 모내기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마무리가 됐다. 이재희 씨는 김밥, 치킨, 빵, 음료수 등 준비한 새참을 꺼내왔고 가족들이 모여 사이좋게 먹기 시작했다.

이재희 씨는 “이앙기 없이 직접 손으로 모를 심었던 시절에는 동네 농부들이 다 같이 모여 모내기를 하고 새참을 먹었다. 그 당시 새참은 마을 축제처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는데 요새는 기계가 해주니까 각자 모내기를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김성구 농부는 이번 해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김성구 농부는 “농사 중에서 제일 힘든 모내기를 가족들이 함께해줘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심은 모들이 한 해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올해는 풍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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