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기념관에서 영광스런 그날을 떠올리며
충남 공주시 산성동 147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인 IMF에 국민의 희망이자
열정의 아이콘이었던 충청도를 고향으로 하고,
박씨의 성을 가진 스포츠 스타는 두 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박세리님과 박찬호님이다.
박세리님은 우리나라가 골프라는 스포츠에서 우승을 하기까지 척박한 불모지였고,
동양인으로서 신체적인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벽에는 박찬호 선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이 벽에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처럼 또렷해서 현실성이 가득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혹독한 연습으로 피와 땀을 흘리며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미국 유명 리그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산성찬호길 19에는 노외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이 주변에 곳곳에 있어서 주차 걱정은 그리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세리 선수의 골프공이 물에 빠지며 양말을 벗고 퍼팅을 하던 장면은 지금 보아도 인상깊습니다.
그녀의 스포츠 경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메이저리거 1세대로서 매해 연속으로 10승 이상을 거두었던 박찬호 선수도 있었습니다.
출입구에는 큰 황소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황소는 거침없이 도전하는 그를 형상화하는 동물이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이색적인 투구폼과 위기때마다
빛을 내는 제구력은 대한민국 사람들을 환호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미국의 LA다저스부터 한국의 한화 이글쓰까지 그가 거쳐갔던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이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 그를 매체를 통해서 흥분감을 느꼈었고,
그 가슴저릿한 감동은 충청남도 공주시 박찬호 박물관에 그대로 보관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서둘러 방문을 하였고 관리자 분은 이제 막 오픈 준비를 하였습니다.
며칠 전에 박찬호 선수에 대한 영상도 보고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는 그를 보면서 그와 함께 호흡을 하고 싶었습니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에 모습과 메이저리거가 되고,
선수시절에 입었던 유니폼까지 몸담았던 팀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이를 워낙 꽉 물고 던지다 보니
흔들리는 이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정도로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돌진했던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부에 화장실과 주차공간도 넓게 형성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쉬운 점은 좁은 길을 지나는 어려움이 상존하였습니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릴 때에 기상악화에서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찬호산성길을 따라 걸으면서 가옥 벽에는 박찬호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차량이 아닌 도보로 여행을 하는 분들이라면 색다른 재미도 느끼실 거라고 보입니다.
기념관 상부에는 박찬호 선수를 상징하는 61번의 야구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16번을 하였지만 LA다저스로 넘어가면서
코치가 16번을 이미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어서
궁여지책으로 기존 숫자를 뒤짚어 활동하였습니다.
남들이 손쉽게 쓰지 않는 61번이여서 더 기억에 남고 상징적인 숫자가 되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여러 국가를 거치며 착용하였던 유니폼부터 신발, 마우스피스, 입장권, 글러브까지
야구 용품 판매점 못지 않게 잘 정돈되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야구 선수로서의 특출난 업적과 구질별로 야구공을 잡는 그립까지
주무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그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답게 선수들의 특징을 잘 살린 피규어가 보였습니다.
예쁘고 아기자기하였습니다. 선수카드도 비싼 값으로 거래 된다고 하니
야구를 사랑하는 그들의 집념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인 LA다저스에서 사용하던 라커룸도 있어
그 내부에 물건을 잘 보관해서 전시해둔 게 인상깊었습니다.
건물 내부 층마다 박찬호님의 선수 시절도 보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미술 작품도 깨알 재미가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에게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인데,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며 호기롭게 기존의 틀을 벗어났습니다.
친환경 복합문화놀이 공간으로서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를 보며 느끼는 게 풍족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