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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이충무공의 묘소에 다녀왔어요

2015.12.21(월) 11:20:12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현충사에 이충무공의 생가가 있는 것은 본 기억이 있는데요.
이 충무공의 묘소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이충무공 신도비

▲ 이충무공 신도비


충무공의 묘소로 가기전에 이렇게 이충무공신도비를 만날 수 있는데요. 
신도비는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자의 무덤 앞 또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이봉상 신도비

▲ 이봉상 신도비


이 비 역시 신도비로 이충무공의 5대 손인 이봉상 신도비입니다. 이봉상은 1728년 (영조4년) 이인좌의 난으로 순절하였다고 합니다. 이 비의 비문은 이재가 지었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충무공, 이봉상은 충민공입니다. 
 

죽은자의 묘

▲ 죽은자의 묘


신도비는 대부분 동남쪽에 위치하는데요.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라는 말은 죽은 자의 묘라는 의미입니다. 
 

오준의 글

▲ 오준의 글


이충무공의 외손자 홍우기의 청으로 효종 때 영의정 김육이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오준이 썼다고 합니다. 
 

이충무공의 묘소안내

▲ 이충무공의 묘소안내


이곳에 가실 분들은 참배 시간을 잘 확인하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정기휴일은 다른 공공시설과 비슷한 매주 월요일입니다. 
 

충무공 묘소의 홍살문

▲ 충무공 묘소의 홍살문

충무공의 묘소로 가는 길은 쭉 뻗은 이 도로를 지나 저 홍살문을 지나가야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45년 4월 28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가 알다시피 노량 해전에서 왜군을 추격중 적의 유탄에 맞아 54세의 일기로 1598년 12월 16일 남해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산군 금성산에 모셨다가 광해 6년 (1614년)에 이곳에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충무공의 묘비

▲ 이충무공의 묘비
 

묘소로 가기 전에 묘비를 만나게 됩니다. 이 비는 세운지 얼마 안된 것입니다. 1998년 11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무공 후손들이 세웠는데요. 이 비의 비문은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지었습니다. 전란중에 조선을 구한 1등 공신인 이순신 장군이 가장 돋보이긴 했었죠. 
 

이충무공의 묘소

▲ 이충무공의 묘소


계백장군 묘나 김좌진 장군의 묘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 묘소보다 크지는 않지만 이순신 장군의 성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느낌입니다. 
 

어제신도비

▲ 어제신도비


이곳에 오니 다시 신도비를 만나게 되는데요. 어제 신도비로 충무공의 공로를 치하하여 정조대왕이 친히 비명을 지어 1794년 (정조 18년)에 세워진 비로 이 충무공 묘소의 정면에서 보면 좌측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묘소로 가는 마지막 계단

▲ 묘소로 가는 마지막 계단


이 충무공을 만나러 가는 마지막 계단입니다.
이 충무공 묘소는 사적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후손들이 관리하다가 1973년부터는 종손의 동의를 얻어 현충사관리소에서 묘역을 관리하여 왔다고 합니다. 이 묘에는 충무공의 배위인 상주방씨와 합장이 되어 있습니다. 
 

묘소앞에 돌 동자승

▲ 묘소앞에 돌 동자승


작은 동자승같은 돌 인형이 이 충무공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돌산양

▲ 돌산양


돌산양도 앞에 있습니다. 이충무공 묘소를 관리하고 지키기 위해 아래쪽에는 위토가 있는데요. 그곳에서 농사를 지여 묘소와 사당의 유지, 제사 등에 필요한 경배를 대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매년 모내기 행사를 합니다. 
 

문관상

▲ 문관상


이순신 장군은 무관이었지만 문관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죠. 
 

등불같았던 인물

▲ 등불같았던 인물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이 백의 종군이죠. 한양을 출발해서 평택을 거쳐 돌아왔고 어머니의 운구를 모시고 왔으며 다시 남도로 내려가는 먼 길을 백의 종군했으며 마지막에는 조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인물입니다. 
 

나라에 대한 충절과 희생

▲ 나라에 대한 충절과 희생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으로 종손이었던 이종의 가산이 쇠진되어 이충무공 묘소의 위토는 일본인 손에 넘어 갈 뻔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곳 묘소가 잘 관리 안되었을 텐데요. 당시 한반도의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위토를 지키고 현충사를 중건했던 역사가 내려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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