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충청웃다리농악의 기원과 유래는?

충청웃다리농악 대부 송순갑 선생 뜻 이어 계속 보존 되길

2015.09.29(화) 09:05:51 | 권혜주 (이메일주소:skwovlf12@hanmail.net
               	skwovlf1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사당의 마지막 일원, 충청웃다리농악의 대부로서 장구와 꽹과리의 1인자로 평가받는 사람, 월해 송순갑 선생이시다.
 
작년 이맘때 도민리포터는 약간 생소한 사실을 접했다. 정확히는 작년 10월 11일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제13회 충남도지사기 일반남녀농악대회에서 청양군 대표로 출전한 충청웃다리농악보존회가 장원을 차지했다는 뉴스기사 보도였다.
 
그때 처음 충청웃다리농악이라는 것을 접했고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시산이 흘러 한달전이었던 금년 8월17일에는 충청웃다리농악의 발상지 청양에서 웃다리농악의 위상 재정립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그제서야 충청웃다리농악의 기원이 청양이며, 청양군이 충남도지사기 농악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알게 됐다.
 
기왕이면 충청웃다리농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도민들에게도 이렇게 소중한 전통문화가 계승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충청웃다리농악이 어떤건지 알려드리고자 충청웃다리농악 보존회가 있는 청양으로 가서 한상봉 회장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청양읍 체육문화센터 내에 자리잡고 있는 충청웃다리농악보존회

▲ 청양읍 체육문화센터 내에 자리잡고 있는 충청웃다리농악보존회

대전무형문화재 1호 웃다리농악전수자이신 충청웃다리농악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한상봉 회장님.

▲ 대전무형문화재 1호 웃다리농악전수자이신 충청웃다리농악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한상봉 회장님.


충청웃다리농악 보존회는 청양군 읍내 체육문화센터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상봉 보존회장님은 대전무형문화재 1호 웃다리농악전수자이셨고 도민리포터를 반겨 맞아 주시며 충청웃다리농악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셨다.
 

충청웃다리농악이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트로피를 보여주시며 웃다리농악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한회장님.

▲ 충청웃다리농악이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트로피를 보여주시며 웃다리농악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한회장님.


한회장님이 말해주시는 충청웃다리농악의 기원과 유래부터 들어보자.
“충청웃다리농악은 충남을 대표하는 무형문화로써 국악, 타악 분야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월해 송순갑 선생이 한평생 연구하고 지켜온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청양군을 포함한 충청지역 일대에서 연회되는 농악이죠. 현재 대전시 지정무형문화재 제1호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전이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였던 사실등에 비춰볼 때 충남과 대전을 하나로 놓고 이해하면 쉬울듯 합니다.”
 
한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대한민국 남사당의 마지막 일원이셨다는 월해 송순갑 선생과 충청웃다리농악의 연관성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월해 송순갑선생의 일대기를 통해 청양이 충청웃다리농악의 발상지가 되었던 연원을 알아보자.
 

충청웃다리농악 창시자이자 대한민국 남사당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월해 송순갑 선생님. 오른쪽은 선생의 활동장면 사진이다.

▲ 충청웃다리농악 창시자이자 대한민국 남사당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월해 송순갑 선생님. 오른쪽은 선생의 활동장면 사진이다.

송순갑 선생의 활동당시 사진

▲ 송순갑 선생의 활동당시 사진

충청웃다리농악의기원과유래는 1

왕성한 활동을 펼치시던 당시의 송순갑 선생

▲ 왕성한 활동을 펼치시던 당시의 송순갑 선생


송순갑 선생은 1912년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신대리에서 태어났다. 신대리는 장터인데다 은산별신제가 열리는 마을이어서 풍물놀이의 전통이 강한 고장이었고 송선생이 6세때 두레패의 삼동으로 뽑혀 무동을 하면서 풍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땅재주 등 기예를 익힌 후 17세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으로 패를 만들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26세때인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인 민속농악 말살정책 때문에 농악이 자취를 감추게 되자 송선생은 패의 결성과 운영을 중단하고 충청도 일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풍물을 지도하러 다니셨다고 한다.
이때 전국적으로 걸립(무리를 지어 각처로 돌아다니면서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놀이를 하고 돈이나 쌀을 받음)이 성행하였고 송순갑 행중도 이같은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1930년대 이후 연희가 뛰어난 경상도 지역과 중부권 지역의 뜬쇠들을 모아 청양군 대치면과 부여군 은산면에 3개의 걸립패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 2개는 거의 사라지고 1개가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일원에서 발기하여 오늘날까지 현존하게 된 것이라 한다.
 
까치내 다리 걸립패에는 고 송순갑 선생을 중심으로 한 풍물예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인원 또한 40~5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민속 말살정책으로 인해 민족정신이 살아있는 대중예술인 풍물에 대한 탄압으로 공연은 방해하고, 악기들을 빼앗는 등 핍박이 극심하였으므로 대규모 식솔을 이끄는데 한계를 느껴 생계를 위해서 행중을 둘로 나눈 바 그 결정적 장소 또한 청양군 대치면의 까치네 다리였다.
 
해방후 전국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던 송순갑 선생님은 1959년 49세 때 덕수궁에서 남사당 재창단 공연을 하면서 그의 상쇠기량을 인정받았다.
특히 송순갑 선생은 뛰어난 기량과 연출력으로, 현재 대전웃다리농악에서 진을 짜는 십자걸이, 양산치기(일렬 횡대형), 고사리 꺾기와 도둑잽이굿, 소고판굿놀이(시작할 때 북의 점고, 징을 3번 울리는 방식)등을 창조해 충청웃다리농악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충청웃다리 농악은 1984년 충남무형문화재 제5호 인증되었고, 대전이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1989년 대전무형문화재 제1호로 인증되어 전국적으로 웃다리 농악의 기와 예능을 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한회장님께서는 충청웃다리농악과 월해 송순갑 선생의 일대기를 설명해 주시면서 우리 농악의 기원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히 알려주셨다.
 

웃다리

▲ 작년에 청양에서 열린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장면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시상식 및 보존회장님이 입상자와 함께 포즈~

▲ 전국 충청웃다리농악 경연대회 시상식 및 보존회장님이 입상자와 함께 포즈~

대회 후 이석화 청양군수님까지 함께 어우러진 신명나는 뒤풀이

▲ 대회 후 이석화 청양군수님까지 함께 어우러진 신명나는 뒤풀이

'얼쑤~좋다'. 항상 본 대회보다 더 재미있는 뒤풀이

▲ '얼쑤~좋다'. 항상 본 대회보다 더 재미있는 뒤풀이


농악이란 농업을 생업의 기본으로 삼고 있던 조상들의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늘날 농악대의 원초적인 형태로써 춤이 수반되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민중들의 소박한 요구를 솔직한 감정과 정서로 단순한 악기와 몸짓, 춤을 행함에 따라 그 리듬을 맞추기 위하여 나무토막 같은 것으로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 악기연주의 시초라 보면 맞을 것이다
 
그것이 점차 발달하여 북과 쇠붙이를 두드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징과 꽹과리, 기타 잡색(雜色)도 첨가되어 농악이란 형태를 갖추며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농악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전해 내려온 민속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음악의 생성, 발전과 더불어 우리 조상들이 간직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연행예술로 인정받는 것이다.
 
웃다리 농악은 대개 충청과 경기지역의 농악을 일컫는데 구성에 있어서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 이것은 농악단의 상쇠들이 1950년에 만들어진 남사당패에 관여했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농경을 생업의 바탕으로 삼아온 마을 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한민족의 기층문화의 문맥을 읽을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오토캠핑장내에 세워져 있는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오토캠핑장내에 세워져 있는

▲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오토캠핑장내에 세워져 있는 충청웃다리농악 유래비

유래비 옆의 충청웃다리농악 조형물

▲ 유래비 옆의 충청웃다리농악 조형물

표지석

▲ 웃다리농악 발상지 표지석


현재 대치면 작천리 오토캠핑장 관리사무실 앞에는 충청웃다리농악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작은 표지석 역시 다리 밑에 세워져 청양이 충청웃다리농악의 발상지임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충청웃다리농악을 만들고 그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켜왔던 송순갑 선생님은 남사당 재건을 물론 충청지역 웃다리농악의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중 2001년 12월 90세의 일기로 타계했는데 이때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물놀이의 대가인 김덕수씨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남사당이신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전통 농악이 제대로 계승될지 걱정스럽다”며 애도했다고 한다.
 
충청지역의 웃다리농악의 대부이자 장구와 꽹과리 1인자이며 대한민국 남사당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송순갑 선생, 그리고 현재까지 계승돼 오고 있는 충청 웃다리농악.
이런 분들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 소중한 전통문화를 오롯이 잘 지키고 보존했으면 좋겠다.
 
 
 

권혜주님의 다른 기사 보기

[권혜주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