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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공주에 있는 순절한 노씨 삼형제이야기

2015.07.19(일) 19:29:00 | 지민이의 식객 (이메일주소:chdspeed@daum.net
               	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의병장 조헌은 알아도 노씨 삼형제를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KBS 드라마 징비록으로 조선의 임진왜란이 다시 재조명되면서 그당시의 상황과 지역의 의병들의 활동이 드러나고 있다.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승군 영규대사와 호서지방의 옥천에서 일어난 조헌은 힘을 합쳐 청주성으로 향했다. 이때 조헌을 따라 일어난 사람들 중에 만경 노씨 삼형제가 있었다. 혈전에 혈전을 거듭한 끝에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의 전투를 치루기 위해 내려왔다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게 된 이야기이다.
 

충남 공주시 우성면 심산길 36-26

▲ 충남 공주시 우성면 심산길 36-26


삼형제는 모두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노응환 (1555~1592), 노응탁 (1560~1592), 노응호 (1574~1592)가 주인공이다. 맏형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노응탁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청주성과 금산전투에서 참전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순절하고 노응호는 청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다시 돌아와 군량을 가지고 금산에 갔으나 두 형은 이미 전사한 뒤였다. 그 형의 시신을 안치한 뒤 고향에 돌아와 노응호는 같은해에 세상을 죽었다고 한다.

노씨 삼의사에 세워진 홍살문

▲ 노씨 삼의사에 세워진 홍살문


노응환과 노응탁은 1831년에 정려와 증직을 받았다. 이의 정려각 앞에는 노응환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사적지에 대한 안내비

▲ 사적지에 대한 안내비


일제 강점기시에도 형제가 같이 일제에 대항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처럼 삼형제가 모두 같은 뜻으로 한 전쟁에 참전한 사례는 많지 않다. 전쟁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국가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일본 황족이나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위대에 복무를 해야 하고 영국의 명문가들도 적지 않은 전쟁에 참전하였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에 오면서 양반들은 군복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권을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응호 정려

▲ 노응호 정려


 삼의사의 정면 우측에 세워진 이 노응호의 정려는 후손이 살던 반촌리에 세워졌떤 것을 1982년 삼의사를 건립 단장하면서 이곳에 옮겨진 것이다.
 

충신을 기리다

▲ 충신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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