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26년은 추사 김정희 선생 탄신 2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데요, 이에 맞춰 예산 신암면에 자리한 추사기념관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이전 개관했습니다! 과천이 추사 예술의 완성지이고 제주의 유배지가 고독 속 명작을 낳은 곳이라면, 이곳 예산은 추사 선생의 학문과 예술이 태동한 '진짜 뿌리'라 할 수 있죠.
<주차 Tip> 추사고택 유적지에는 곳곳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이동하며 둘러보거나, 한 곳에 주차한 뒤 도보로 관람해도 무난합니다.
저는 먼저 추사기념관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전 9시 개관과 동시에 첫 관람객으로 입장했습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기념관에서 약 300m 떨어진 용궁리 백송을 둘러보고, 바로 옆 백송공원과 화순옹주 홍문까지 관람했습니다. 이후 차량을 추사고택 앞 주차장으로 옮겨 추사고택과 김정희 선생 묘를 차례로 둘러보았지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서예가, 실학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났던 그는 24세에 청나라 베이징을 방문해 당대 최고의 대유학자들과 교류하며 고증학과 금석학의 깊은 안목을 넓혔습니다.
이후 관직에 올랐으나 정쟁으로 인해 제주도에서 9년, 북청에서 2년간의 긴 유배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독한 시련의 시기를 예술적 승화의 계기로 삼아 독창적이고 대담한 조형미를 지닌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으며, 유배지에서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기리며 그린 조선 문인화의 최고 걸작 '세한도(歲寒圖)'를 남겼습니다. 또한 북한산비가 신라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내는 등 금석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김정희 선생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 정신을 바탕으로 학문과 예술을 하나로 통합해 조선은 물론 청나라 학자들에게까지 큰 찬사를 받은 시대의 대지성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탄신 240주년을 맞아 추사기념관이 그분의 고향인 예산애 지난 2026년 7월 11일 확장 이전하였습니다.
예산 신암면 추사고택 인근에 건립된 기념관은 지상 2층, 연면적 2천 7백 미터 규모로 조성됐습니다.
기념관에는 진품 30점을 포함한 추사 관련 유물 39점이 전시되어 있고, 옥상정원과 추사 체험실 등이 들어섰습니다.

기념관 입구 로비에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추사체 글씨 중 널리 알려진 ‘길상여의(吉祥如意: 좋은 일이 뜻대로 일어난다)’ 문양과 서화를 바탕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추사고택의 봄·여름·가을·겨울 풍경을 고화질 미디어아트로 구현하여, 계절 변화에 따른 고택의 고즈넉한 정취를 몰입감 있게 감상할 수 있었지요.

김정희가 1809년 생부인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갔을 때, 당대 최고의 학자인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을 만나 실사구시 학문과 서예 기법을 전수받고 교유했던 역사적 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의 선생의 대표작 세한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에 감동해 그려준 국보 명작으로,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간찰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손자에게 보낸 편지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간찰은 추사가 가솔 및 손자에게 보낸 한글/한문 서간으로, 위대한 학자의 모습 뒤에 숨겨진 따뜻하고 자상한 할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추사가 평생 사용한 다양한 호(號)와 인장(낙관) 모음입니다. 이 인장들은 글씨나 서화 작품에 찍혀 작품의 주인을 밝히고,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문양의 인장들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기념관 개관 특별전 ‘추사 요동을 가다’는 개관일인 2026년 7월 11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추사기념관 내 특별전시실에서 열립니다.

특별전시실 입구에는 ‘추사 요동을 가다’ 패널에 젊은 시절 연행길에 올라 조선을 떠나 중국 요동 지역을 거쳐 연경(베이징)으로 향했던 이동 경로와 함께 보여줍니다.

한양을 출발해 연경에 도착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약 6개월간의 고되고 멀었던 연행 여정과 거점 도시들을 기록한 지도가 청나라로 가는 길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성(서울)에서 출발하여 의주를 거쳐 중국의 요동 지역을 거쳐 북경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이 지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네요.

청나라 학자·문인들과 교류하며 조선 후기 실학 및 청나라 고증학 발전에 이바지한 학술·문화적 성과를 정리한 전시 구역입니다.

옹방강, 완원 등 추사와 사제의 인연을 맺거나 깊은 교유를 나눴던 청나라 명사들이 추사에게 선물하거나 화답으로 보낸 서화 작품들로 가득하군요. 이를 통해서 추사 김정희 선생이 국제적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명성을 얻었는지 엿볼 수 있었답니다.

추사기념관을 둘러본 후 인근 용궁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백송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벗겨져 흰빛을 띠어 백골송이라고도 불리며, 중국이 원산으로 조선시대 사신들이 들여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예산 용궁리 백송은 약 200년 된 나무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09년 청나라를 다녀오며 가져온 종자를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생물학적 희귀성과 함께 당시 한·중 교류와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추사기념관 바로 남쪽에는 백송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용궁리 백송 주변을 정비해 만든 휴식 공간으로, 방문객들이 백송의 웅장한 모습과 울창한 숲의 정취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공원에는 백송을 비롯한 다양한 소나무와 추사 김정희 선생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 산책을 하며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입니다.

화순옹주 홍문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이자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열녀문입니다. 남편 김한신이 38세에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으며, 훗날 정조가 그 뜻을 기려 홍문을 내렸습니다.

홍문 안에 있는 묘막터(무덤 가까이에 지어 묘지기가 사는 작은 집)는 원래 53칸의 큰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있습니다. 앞면 8칸·옆면 1칸 규모이며 근래에 담장을 설치하였습니다.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소입니다. 그는 13세에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혼인해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뛰어난 서예와 시문, 전각 실력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깊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 두 사람은 이곳에 합장되어 있습니다.

추사고택은 추사기념관에서 남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일단 차를 이곳 주차장으로 이동하였지요.
추사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2동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합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습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습니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습니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으로,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추사가 태어날 무렵 샘물이 가물었다가 태어나자 다시 물이 차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고택 밖에 있는 우물입니다.

김정희의 묘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김정희 선생 고택에서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경기도 과천에 있던 묘를 1937년 선조들의 묘가 있는 예산으로 옮기면서, 첫째 부인 한산이씨와 둘째 부인 예안이씨의 묘를 함께 이장해 합장하였습니다.
묘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으며, 오른쪽에는 1934년에 세운 묘비가 있습니다. 비석 앞면에는 ‘완당선생 경주김공휘정희 묘’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과 양옆에는 김정희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택과 묘소, 영당 주변 잔디밭에는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마치 세한도의 선비 정신을 연상시키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단순히 "추사는 추사체를 만든 대단한 서예가다"라는 지식에서 벗어나, "예산이라는 공간이 추사라는 거장을 만든 뿌리였구나"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유물 보존 환경이 대폭 개선되어 진품 유물이 전해주는 울림도 한층 크게 다가왔고, 손자를 위해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에서는 대문장의 인간적인 온기까지 느껴졌습니다.
특히 기념관을 둘러본 뒤 고즈넉한 추사고택과 백송공원을 따라 조용히 산책하는 코스는 주말 나들이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 여행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추사 선생의 법고창신(法古創新 -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 정신과 예산의 깊은 풍류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 유적지 안내>
○ 추사고택 :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 추사기념관 :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95
○ 관람시간 : 09:00~18:00
○ 휴무 :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무료
○ 문의전화 : 041-339-8247~8
○ 주요 볼거리 :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기념관, 김정희 묘, 화순옹주 홍문 및 묘역, 예산 백송 등
○ 관람 소요시간 : 주요 유적을 천천히 둘러보면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권장
○ 주차 : 추사기념관 및 추사고택 주변 주차장 무료 이용 가능
○ 홈페이지 : https://www.yesan.go.kr/chusa.do
* 방문 날짜 : 2026.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