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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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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갈매못 성지 : 바다가 기억하는 충청도 순교의 역사

서해를 품은 전국 유일의 바닷가 순교성지를 걷다

  • 위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375-2
  • 등록일자
    2026.07.16(목) 10:18:28
  • 담당자
    타이준 (taejun9460@gmail.com)
  • 보령 오천항 인근에는 조금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갈매못 성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종교에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남긴 긍정적 영향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역사 속 종교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순례자의 마음보다는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갈매못 성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갈매못 성지 입구

    ▲ 갈매못 성지 입구


    충청도와 천주교의 특별한 인연

    충청도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당진 솔뫼에서 태어났고,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갈매못 성지 앞마당

    ▲ 갈매못 성지 앞마당


    당진의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서산의 해미성지, 예산의 여사울성지, 홍성의 결성성지까지. 충남 곳곳에는 천주교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퍼져나간 만큼 박해도 거셌습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는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유교적 질서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천주교는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충청도는 그 역사의 중심 무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갈매못 역시 그런 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곳

    갈매못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처음 들으면 갈매기가 많아서 붙은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 유래는 다릅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마을 뒷산의 형세가 마치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모습과 같다 하여 갈마연(渴馬淵), 갈마연동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갈마연이 갈매못으로 변했습니다.


    갈매못 성지 안내 지도

    ▲ 갈매못 성지 안내 지도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연못."

    성지 관계자들은 오늘날의 갈매못을 "지친 사람들이 생명의 물을 마시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종교를 떠나서도 어딘가 마음에 남는 이름이었습니다.


    바다를 품은 순교성지

    성지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갈매못 성지 예수 성심상

    ▲ 갈매못 성지 예수 성심상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예수 성심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푸른 서해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전국에 많은 순교 성지가 있지만 갈매못은 조금 특별합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순교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바다와 갈매기, 멀리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성지라기보다 전망 좋은 해안 공원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왜 하필 갈매못이었을까?

    예수 성심상을 지나면 다섯 순교성인을 기리는 야외 제대가 나타납니다.


    갈매못 성지 순교 다섯성인 흉상

    ▲ 갈매못 성지 순교 다섯성인 흉상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위앵 민 마르티노 루카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곳에서 순교한 다섯 분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하필 서울이 아닌 이 먼 바닷가에서 처형이 이루어졌을까.


    기록에 따르면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당시 오천항 앞바다 외연도에는 프랑스 함대가 출현한 적이 있었고, 조정은 이를 서양 세력의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강경한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외연도와 가까운 충청수영을 처형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전해집니다.

    당시는 고종의 국혼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궁중에서는 서울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꺼려 사형수들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보내 형을 집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치와 외교,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갈매못은 역사적인 형장이 되었습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

    야외 제대를 지나면 기념 전시관이 나옵니다.


    야외 제대와 기념전시관

    ▲ 야외 제대와 기념전시관


    전시관은 크지 않지만 병인박해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재 성인으로 시성된 다섯 분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갈매못에서는 약 500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기념관 내부 전시물

    ▲ 기념관 내부 전시물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부였을 수도 있고 농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던 평범한 가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삶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승리의 성모성당에서 바라본 성지

    전시관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승리의 성모성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승리의 성모성당 올라가는 길

    ▲ 승리의 성모성당 올라가는 길


    성당은 화려하거나 웅장하기보다는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성당 앞 야외제대

    ▲ 성당 앞 야외제대


    성당 앞에는 넓은 야외 제대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성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큰 행사나 순례객이 많이 모이는 날에는 이곳까지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안쪽에는 다섯 순교성인의 유해 일부도 모셔져 있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특별한 신앙의 공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장소로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갈매못은 그런 질문을 조용히 던지는 장소였습니다.


    다섯 성인의 유해

    ▲ 다섯 성인의 유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은 곳

    갈매못 성지를 둘러보며 느낀 것은 이곳이 단순한 천주교 성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곳은 병인박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종교적 신념의 유무와 관계없이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섯 성인이 처형 된 뒤 효수되었다는 위치를 알리는 십자가

    ▲ 다섯 성인이 처형 된 뒤 효수되었다는 위치를 알리는 십자가


    해미성지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장소라면, 갈매못은 그 역사의 마지막 장면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푸른 바다와 잔잔한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아래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순례지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 현장으로 다가오는 곳.

    보령 갈매못 성지는 그렇게 조용히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갈매못 성지

    ○ 위치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 운영시간

      - 하절기(3~10월) : 09:00 ~ 18:00

      - 동절기(11~2월) : 09:00 ~ 17:30

    ○ 관람료 : 무료

    ○ 주차 : 무료

     * 취재일 : 2026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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