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오천항 인근을 걷다 보면 바다를 내려다보는 성곽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산책을 즐기고, 주민들이 오가는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수백 년 전 이곳은 조선의 서해를 지키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바로 충청수영성입니다.
조선시대 충청수군의 본영이었던 이곳은 오늘날로 치면 해군작전사령부나 지역 함대사령부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충청도 연안 방어는 물론이고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전국 각지로 병력과 함선을 보내야 했던 중요한 군사기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성곽을 둘러보는 것보다도, 조선의 바다를 지켰던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 보령 수영성 안내판
조선의 서해를 지키던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충청수영성은 1510년 충청수사 이장생이 돌로 다시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 안에 수군절도사의 관아를 비롯해 군사 시설과 창고, 병사들의 생활 공간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 충청수영성 성벽 출입문
원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대부분이 소실된 현재도 약 1,600m에 이르는 성벽이 남아 있어 당시 위용을 짐작하게 합니다.
성벽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진휼청이었습니다.

▲ 충청수영성 진휼청
진휼청은 흉년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백성을 구제하던 기관입니다.
처음에는 군사시설 안에 왜 이런 공간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조선시대 수군은 전쟁만 담당하던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해안 치안 유지와 행정, 재난 대응까지 담당하는 지역사회의 중심 기관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바다를 지키는 일과 백성을 지키는 일은 결국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바빴던 수군
역사를 이야기할 때 충청수군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라수군, 그리고 조선 수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했던 경상수군에 비하면 존재감이 다소 옅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 성벽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하지만 실제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고된 임무를 맡았던 수군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북방에서 여진족의 위협이 발생하면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고, 왜구의 침입이 발생하면 남해안 방어에도 동원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연합작전에 참가했고, 조선 수군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칠천량해전에서는 충청수사 최호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강화도 갑곶진 일대 방어에도 참여했습니다.
전국 어디에서 위기가 발생하든 충청수군은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곽을 걷다 보면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수군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

▲ 성벽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잘 보존된 성곽 위에서는 오천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관광객들이 항구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 드라마 동백꽃필무렵 촬영장소 팻말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 알려진 풍경답게 정겨운 어촌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망루에서는 병사들이 수평선을 살폈을 것이고, 부두에는 군선들이 정박해 있었을 것입니다.
왜구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출항 명령을 기다리던 긴장감이 이곳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성벽 위에 서니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듯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정자라 불린 영보정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충청수영성의 상징인 영보정에 도착하게 됩니다.

▲ 영보정
충청수영성의 영보정은 오래전부터 천하의 명승으로 손꼽혀 왔던 곳입니다.
수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시와 글을 남겼고, 풍광을 극찬했습니다.

▲ 영보정 내부 현판
조선의 명재상 백사 이항복은 영보정을 조선 최고의 정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고 전해집니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이곳을 방문해 경치를 감상했습니다.
영보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왜 그들이 이곳을 높이 평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영보정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푸른 바다와 포구, 그리고 성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군사적 요충지이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영보정이었습니다.

▲ 규남 하백원이 그린 충청수영성
특히 규남 하백원의 그림 속에도 충청수영성과 영보정이 등장합니다.
그림에는 거북선과 함께 충청수영 일대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곳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명승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충청수영의 이야기
영보정 뒤편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발굴조사 현장이 나타났습니다.
현재도 충청수영 관련 유적에 대한 조사와 복원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 충청 수영성 발굴현장
특히 충청수영 장교청과 내삼문 일대는 중요한 공간으로 꼽힙니다.
내삼문은 수군절도사의 집무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고, 장교청은 군관들이 업무를 보던 장소였습니다.

▲ 내삼문

▲ 장교청
현재 남아 있는 건물만 보더라도 상당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충청수영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건물이 존재했습니다.
관아와 군사시설, 창고와 생활공간이 체계적으로 배치된 하나의 작은 도시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굴 현장을 바라보며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과연 앞으로 어떤 건물지와 유물이 모습을 드러낼까.
새로운 발굴 성과가 나온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충청수영의 모습도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역사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 밝혀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서해를 지켜낸 사람들의 흔적
충청수영성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조선의 서해를 지켜낸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성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수군들이 떠올랐습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순찰에 나섰던 병사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밤을 지새웠던 군관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
그들의 시간이 성곽 곳곳에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 보령수영성 비석
보령 충청수영성은 조선의 바다를 지켜낸 충청수군의 역사와 삶이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 현장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특별한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충청수영성
○ 위치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61-1 일원
○ 관람료 : 무료
○ 주차 : 가능
○ 주요 볼거리 : 충청수영성 성곽, 영보정, 진휼청, 장교청, 내삼문, 발굴조사 현장
* 취재일 : 2026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