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천안대로 대흥 3길엔, 고려 현종 12년(1021년) 때 창건한 '봉선홍경사' 절터가 남아있고, 1026년 세워진 봉선홍경사 사찰의 창건 기록이 담긴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가 이 터전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
‘봉선홍경사’는 단순히 절 이름이라기보다, 고려 왕실의 불교 신앙과 사찰 창건의 정치적 의미가 결합된 명칭이라고 한다. 당시 교통 요충지였던 성환 일대 행인 보호와 사찰 창건 경위를 전하고 있는 이 비문은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도 크다. 절 이름 앞 ‘봉선(奉先)’은 고려 현종(顯宗)이 불교의 교리를 전하기 위하여 절을 짓고자 하였으나 그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안종(安宗)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 천안대로에서 들어서면 왼쪽 앞으로 보이는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와 나지막한 2층 돌탑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왼쪽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정면
갈비(碣碑)는 일반적인 석비(石碑)보다 규모가 작다. 일반적으로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碑) 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지만, 천안 홍경사 갈기비는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석비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와 비문
비문에는 절이 세워진 경위뿐 아니라 당시 불교계 인물과 왕실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고려 초기 지방 사찰과 중앙 권력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비는 비문의 내용에서,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쓰여있다. 갈기비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 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비(碑) 몸돌 앞면 위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奉先弘慶寺碣記)’라는 글이 가로로 새겨져 있다.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머릿돌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설명문
거북 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 변화로 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주고 있다. 사진에서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오른쪽
천안대로에서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쪽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널찍한 주차장과 깔끔한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화장실 뒤쪽으론 쉼터인 정자도 있는데. 울창한 초록 나무로 가려져 그 형체가 다 드러나질 않았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대표적 관광 자원이자 명소로 선정한 8개소 중 제8경에 해당한다.
참고로 제1경 독립기념관, 제2경 유관순열사 사적지, 제3경 천안삼거리공원, 제4경 태조산왕건길과 청동대좌불, 제5경 아라리오 조각광장, 제6경 성성호수공원, 제7경 광덕산, 제8경 국보 봉선홍경사 갈기비 등이다.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주차장과 화장실, 정자 쉼터와 갈기비 안내판
널찍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쉼터인 정자 앞으로 걸어가면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다.
내심 혼자서, '이곳이 봉선홍경사 절터였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폰 카메라 셔터를 눌렸다.
개망초 꽃무리가 무성했고, 나팔꽃과 비슷해 보이는 보라색 메꽃도 바람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한가로운 오후 풍경이 두 눈에 가득 들어찬 한적한 터였다.

▲ 정자 쉼터 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터 -개망초 군락과 메꽃 무리

▲ 개망초 무리와 메꽃들이 자유롭게 서식하고 있는 곳
*이 글은 2026년 7월 1일 오후 3시경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둘러보고 작성했습니다.
[참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95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문의처 : 천안 관광정책팀 041-521-5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