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초록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이 보이고, 이곳에서 5분 정도 더 가면, 목천읍 동리 운봉산 자락에 용화사가 있다.
용화사는 석조여래 입상 2구를 비롯하여, 기와조각 등의 유적들이 발굴된 곳으로, 발굴된 유적들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에 지어진 사찰 터로 추정되는 '용화 사지' 절터 위에 자리한 소박한 절집이다. 대한 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 용화사로 들어서는 입구
용화사로 들어서면, 먼저 넓은 주차장과 이어진 가까운 계단 연못 위로, 약사여래불의 인자한 모습이 보인다.
석등 좌우로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이 군무를 펼치기도 했고, 절집에서 새어 나오는 향공양의 은은한 향기가 꽃들의 춤사위를 더 아름답게 휘감아 돌고 있었다.

▲ 용화사 약사여래불과 주의 풍경
용화사 경내에는 오른쪽부터 대적광전, 대웅전, 요사채만 있어, 다른 사찰보다 소박해 보인다.
사찰 왼쪽으로 요사체가 있다. 이곳은 경내에서 승려가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수행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거주용 건물(승방)이므로 굳이 사진에 담지 않았다.
용화사 '연꽃지'와 '약사여래불상
마치 흰 연꽃이 피어있는 듯 보이는 연꽃지의 약사여래불에 매료된 순간, 저절로 발길이 멈추어 섰다.

▲ 사진 위, 용화사 연못 약사여래불 뒤, 오른쪽부터 대적광전, 대웅전, 요사채 / 아래, 연꽃지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이다. 용화사 약사여래불은 지그시 감은 듯 보이는 인자한 눈으로 중생을 굽어살펴보고 있다.
용화사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불전으로, ‘적광’은 번뇌가 끊긴 자리에서 빛나는 참된 지혜의 빛을 뜻한다.

▲ 용화사 대적광전
‘대적광’은 연화장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과 우주에 광명을 두루 비추는 비로자나불의 의미'를 반영한 명칭이다. 대적광전은 대광명전, 대적전, 비로전, 화엄전 등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용화사 중창 연혁 / 공덕비
현재의 목천 용화사는 1972년 6월, 초가집 방 2칸과 석조여래 상만 있던 이곳에 자성 스님과 지용 스님이 거주를 시작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사이에 세워진 용화사 중창 연혁 / 공덕비
1974년 요사체 2칸을 불사했으며, 1976년 석조여래상 입상이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로 등록됐다. 1977년 4월, 20평의 대웅전 불사를 시작, 1981년에 완공했다. 2012년 대적광전을 착공하여 2017년 낙성하면서 지금의 절집 형태를 갖추게 됐다.
용화사 3층 석탑
기단을 새롭게 만들어 세운 용화사 3층 석탑은 대적광전 옆, 앞쪽에 우뚝 서있다.

▲ 용화사 삼층석탑과 대적광전
고려 초기, 석조여래 입상
용화사 대웅전 앞쪽으로 2구의 '석조여래 입상'이 세워져 있다. 여래상이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께서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 대웅전 앞, 석조여래 입상 2구 / 불상 주의 바닥에서 보이는 여러 개의 옛 주춧돌
목천 용화사 석조여래 입상은 1,100여 년(918년 경~2026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중생들을 묵묵히 지켜본 부처이시다.
당당하면서도 단아한 자태는 시공간을 초월한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용화사에서 중생의 번뇌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
석조여래 입상은 감긴 듯 잠긴 듯한 실눈 사이로 중생의 고뇌를 모두 굽어보고 있다. 작은 입가에 담긴 은은한 미소, 통통한 볼이 주는 따뜻한 느낌, 중생의 고뇌에 찬 웅얼거림도 모두 들어주는 크고 긴 두 귀를 지닌 인자한 모습이다. 이런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108 번뇌가 쓱 씻겨 나가는 것 같다. 용화사에선 조용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해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석조여래 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58호이며, 통일신라시대 양식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 초기 입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 주위에는 옛날에 건물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도 어려 개 보인다. 경내에는 기단을 복원해 세운 삼층석탑과 석조의 부재들이 석조여래 입상과 함께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목천 용화사는 이렇듯 고려 시대 귀중한 불교 유산을 품고 있는 사찰이다.
용화사 대웅전
팔작지붕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불상 뒤로는 천 불이 조성되어 있다.

▲ 용화사 대웅전 / 대웅전 불상과 천 개의 불상

▲ 대웅전 처마 끝 풍경과 석조여래 입상 / 대웅전 정면, 아름다운 팔작지붕 처마

▲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석조여래 입상 2구와 삼층석탑

▲ 용화사 대웅전 옆, 작은 불상 / 대웅전과 대적광전 사이, 봄 풍경 속에 놓인 작은 불상

▲ 6월 초록 수풀과 봄꽃이 조화로운 아름다운 용화사 풍경

▲ 사찰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바라본 용화사 연못 '연꽃지'

▲ 경내를 내려서서 바라본 용화사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봄 풍경
용화사를 나서서, 목천 향교로 향했다. 목천 향교는 용화사에서 자동차로 5~7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향교 입구엔 '천안의 역사 문화 둘레길 표지판'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고 향교로 올라갔다.

▲ 천안의 역사 문화 둘레길 - 목천 향교 입구에 서 있던 안내판
용화사 가까이 목천 향교, 용연저수지가 있고,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 생가지도 멀지 않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목천 향교 - 명륜당
목천 향교는 출입문이 잠겨 있었고, 향교 명륜당 벽에는 2025년에 진행했던 행사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 있어서 아쉬웠다. 활성화된 목천 향교를 기대해 보면서, 가까이 있는 용연 저수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 목촌 향교 '명륜당과 동재 / 목천 향교 안내판과 명륜당
목천 향교는 조선 건국 후, 현감이 파견된 1413년(태종 13) 이후 세워진 곳이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각 고을(군현)에 설치한 관학 교육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 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목천 현감 안정복이 1779년 펴낸 목천의 지리지 <대록지 大鹿誌>에 의하면, 임진왜란 후, 한혁이 주관하여 이 자리에 옮겨 세웠다고 기록에 남아있으며, 명륜당을 수리할 때, 1642년(인조 20)에 쓴 상량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목천 향교는 앞쪽으로 유생들이 생활하는 동재와 학문을 하는 명륜당을 두었고, 뒤로는 제향을 올리는 대성전을 둔, 전학 후 묘식 구조로 배치되었다. 대성전 앞에는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으며, 이곳은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다.
목천, 용연 저수지
용연 저수지 '천안시 국민여가 캠핑장'이 있는 쪽으로 가면, 자동차로 1분여 거리에 있다. 용연 저수지 둑방 아래 있는 무료 주차장의 규모도 꽤 컸다.

▲ 둑길에서 바라본 용연저수지 풍경
1일 만보 걷기'는 점점 체력에 벅차오르는 운동이 되고 있지만, 아직은 빼놓지 않고 실천에 옮기고 있던 터라, 용연저수지 둑길을 따라 잠시 산책을 즐겼다. 산책 둑길은 한적했고, 산책길을 덮고 있는 초록 풀들 상태를 보니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크게 붐비지는 않는 듯 보였다. 둑길은 텅 비어있었지만, 근처에 있는 카페 통창으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들여다 보였다.

▲ 용연 저수지 산책 둑길
짧은 산책을 즐기고, 용연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드라이브를 즐기면 기분전환도 된다.
잠시 자동차에서 내려, 용연 저수지의 고즈넉한 풍경을 품다 보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이런 여유로움이야말로 뜻밖에 덤으로 얻은 보너스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 저수지 둑길 반대편에서 바라본 용연 저수지 풍경
용연 저수지를 벗어나 태조산 자락을 따라 달리다 보니, 훈훈하면서도 시원한 산바람이 자꾸 아는 체하니, 차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따가운 6월의 햇살조차 벗으로 품고 돌아왔다.
용화사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2길 12-22
*이 글은 6월 9일(화) 용화사와, 목천 향교, 용연저수지를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