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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2024.06.27(목) 22:57:20젊은태양(claudi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금산군에는 금산의 중심지에 금산의 역사와 인물을 담은 충효예 공원이 있습니다.
충효예 공원에는 금산의 역사와 인물을 돌에 새겨서 소개하고 있는데요.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금산군의 연혁은 구석기시대부터 기록돼 있습니다.
제원면 천내리 등 13개 소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뗀석기, 고토양층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천내리는 중앙으로 금강이 흐르는 곳이어서 물가 주변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또한 천내리에서는 기원전 3000년 경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도 발굴됐고, 제원면과 진산면에서는 기원전 1000년 겅의 고인돌, 남일면 덕천리와 음대리에서는 간석기인 마제석검도 발견됐다고 합니다. 
금산군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했던 역사가 반만 년이 넘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5~6세기까지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이었고, 6~7세기에 금산군은 신라의 영역이었다고 합니다.
경계선에 있었으니 국경 다툼이 치열했을 것입니다.
금산군 진산면에 있는 태고사는 대둔산 자략, 해발고도 878m의 능선에 있는데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충효예 공원의 기록에는 '661~681 신문왕 때'라고 되어 있는데, 역사를 찾아보면 그 시기는 신문왕 선대인 문무왕(재위 661~681) 때라서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왕은 681년에 즉위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에도 미륵사, 서대사, 보석사 등을 창건했다고 하니. 금산군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고려시대에는 금계군, 금주군이었다가, 조선 태종 때 진산향교(1397)를 설립하고 '금산군'으로 개칭(1413)했습니다.
임진왜란(1592) 때에는 금산전투(7.10, 8.18, 8.27), 이치대첩 승리(7.20)와 같은 치열한 전투가 금산 지역에서 있었습니다. 
곧 7월이 되니 432년 전 금산 지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금산향교는 숙종 때(1684) 설립했고 용강서원(1716)도 설립했다고 합니다.
행정적으로 점점 중요한 고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연혁을 담은 석비를 지나면 금산의 인물을 소개하는 벽이 있습니다.
금산의 인물은 '의를 지키다', '충을 세우다', '효를 높이다', '난을 이기다', '독립을 외치다'로 항목을 두어 설명합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의를 지키다'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야은 길재(1353~1419)입니다.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도 진산 출신으로 정약용의 외사촌이라고 합니다.
윤지충 바오로가 순교한 사건이 신해박해인데, '진산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내용입니다.
함께 최초의 순교자가 된 권상연 야고보 또한 진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임진왜란 때 고경명 의병장은 담양에서 의병을 모아 금산으로 와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금산에서 전사했고 금산의 성곡서원에 배향됐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명장 권율 장군은 남원에서 의병을 모집해서 금산 이치대첩에서 왜군 정예부대를 대파하고 한강변 행주산성 전투까지 7년의 왜란 동안 군대를 지휘했던 명장입니다. 
문신이며 의병장인 조헌도 금산으로 와서 영규대사와 합진해서 싸우다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금산 종용사에 모셨고, 영규대사도 또한 같은 전투에서 전사하고 종용사에 제향됐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금산 출신은 아니지만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치열하게 왜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인물의 끝은 '독립을 외치다' 항목입니다.
당시 금산군수였던 홍범식(1871~1910)은 국치를 당하자 목 매어 자결했는데, 전국 360여 명의 군수 중에 절개를 지킨 이는 홍범식 군수 한 분뿐이었다고 합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인물 소개의 끝에는 금산 출신 세 분의 흉상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임영신(1899~1977),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인 유진산(1905~1974), 그리고 극작가 임희재(1919~1971)입니다.

임영신은 초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며 1919 삼일 만세운동 때 잡히기도 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관여하기도 했지만, 일제 말기(1941)에는 친일단체에 참여해서 부인대 지도위원을 맡았다는 어두운 과거도 있습니다.
친일의 역사는 희석되고 광복 후에는 1946년에 중앙여자대학을 세웠다가 중앙대학으로 개편해서 설립자 겸 총장이었으며 장관, 국회의원도 지내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효예 공원에는 '금산 평화의 소녀상'(2020년 11월 세움)도 있고, 일제 강점기 징용 노동자상도 있습니다.
금산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는 조금 다른데, '만남'이란 제목으로 김종필 교수(한남대학교)의 조각입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효예 공원의 연못 너머에 홀로 서있는 강제 징용 노동자상도 보입니다.
금산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세웠습니다.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20세기 금산 지역의 중요한 역사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충효예 공원은 그래서 더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내용을 읽어보니 역사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금산 출신 학생들이 배우는 기본에는 충효예 공원 탐방이 필수이지 않을까요?

충남 금산의 역사와 인물 이야기-충효예공원 사진


충효예공원
충남 금산군 금산읍 상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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