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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천년이 넘는 시공을 지나 그 앞에선 지금 ...........................

2024.05.19(일) 16:58:36가람과 뫼(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맑고 높다.
감미로운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 주고
짙게 물들어 가는 신록이 마음 마저 설레이게 한다.
평소 자별하게 지내는 스님의 주선으로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로 답사 여행을 떠났다.

차창을 스치는 목가적인 풍광을 보고 있다 보니 
부지런한 농부의 써래질과 모내기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의 바쁜 손길이 
새삼 절기를 느끼게 하는듯 하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마음 한켠에 다가서며 모처럼의 여행길을 풍요롭게 한다.

오랫만에 들린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 앞에 주차를 하고
역사관 안으로 들어 가니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과 선종 ,
그리고 성주사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여행의 흥미를 북 돋은다.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역사관 옆에는 전통 한옥 양식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초입에 성주사지 쉼터라 쓰여 있지만 막상 건물을 보니
공부하는 학당을 연상하게 한다.
탁 트인 공간이 무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식힐수 있는 훌륭한 자리가 될듯 싶다. 

석등
▲ 석등

5층 석탑
▲ 5층 석탑

석계단
▲ 석계단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 금당 터

길게 둘러진 돌담길을 돌아 성주사지 터에 들어섰다.
전성기 시절에는 2,000 여명의 스님들께서 수도를 하셨다고 하는 이곳에는
이제 4기의 석탑과 하나의 석등 그리고 석불 입상 한분과 금당이 있던 터 와
낭혜화상 백월보광 탑비만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백제 시대때 '오합사' 라는 이름으로 백제 법왕 때 창건되었다 전해지는 이곳은 
전쟁터에서 돌아 가신 전사들을 위로 하고자 지어진 호국 사찰이었다 한다.
세월의 부침속에 폐사가 되었던 오합사를 신라 무성왕이 '성주사'로 개명을 하고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낭혜화상께서 중창하시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의 개산조가 되셨다 한다.

성주사지에는 보물 제 19호로 지정된 5층 석탑과
보물 제 2021호로 지정된 동탑, 보물 제 20호 로 지정된 중앙탑,
보물 제 477호 로 지정된 서탑이 있다.
불탑은 본래 부처님의 진신사리 또는 불교의 경전 등을 넣으며
탑층은 3, 5, 7, 9 등의 홀수층으로 구성되어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라마다 탑의 재질 또한 다른데 우리나라는 석탑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이 주를 이룬다.

가람 배치의 중심이 되는 석탑의 배치에 있어서도 
고구려 지역에서는 일탑 삼금당의 배치를 하였고,
백제 지역에서는 일탑 일금당의 배치를 하였으며,
신라 지역에는 쌍탑 일금당의 배치를 하였다 한다.

이에 비추어 성주사지에 있는 4기의 석탑을 보며 느낀점은 
다른 곳에 있던 석탑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유추하게 된다.

동탑
▲ 중앙탑

서탑
▲ 서탑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 동탑

금당터를 오르다 보니 돌계단 좌우에 있는 돌사자의 석질이 달랐다.
안내문을 읽다 보니 1986년 어느 못된 인사가 돌사자를 가져가서 옛사진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씌여 있다.
문화재의 발굴 복원도 중요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
그 또한 중요하다 생각 된다.
이제는 문화재에 대한 의식 제고가 필요하지 싶다.
문화재는 우리가 지금 잠시 우리가 보호하고 있지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돌사자가 제자리로 돌아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보령 성주사지 이야기 사진

담장쪽 끝에 자리하신 석불 보살 입상을 찾았다.
이곳에 계신 석불 보살 입상은 
풍화 작용 탓인지 훼손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서 계신 모습과 옛 자료 사진을 보고 미륵불이 아닌가 하는데
그에 대한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되야 하지 싶다. 

다행스레 대낭혜 화상 백월 보광 탑비는 비각을 세워 보호되고 있다.
신라 시대때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비문을 짓고,
최인연 선생이 해서체로 썼다고 전해지는 백월보광탑비 !
천년이 넘는 시공을 지나 그 앞에선 지금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거듭 감탄을 할 뿐이다.

인간의 본성이 본래 부처의 성품임을 깨달을 때 부처가 된다 하며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처의 마음을 중생에 전한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

자기의 본성을 봄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창하신
낭혜 화상의 법명은 무염이다.
태종무열왕의 8대손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성주산문의 개산조가 되신
낭혜 대사께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고 싶다.................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보령 성주사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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