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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비움의 미학

2024.05.17(금) 08:58:24충남포커스(jmhshr@hanmail.net)

캘리그라피 강사-김성자 작품(충남 당진)

▲ 캘리그라피 강사-김성자 작품(충남 당진)



“세상에나, 정리를 하고 세어보니 팔려고 내놓은 바지가 70개 더라구요.”

지난 주중에 한 지인이 옷을 정리하면서 집으로 몇몇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매일 매일 하나 둘 사 나른 옷들이 어느새 두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딸이 첫 월급을 받아 사 준 옷, 평상시 즐겨 입는 옷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놓아 저렴한 값에 판매해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빚더미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간 남편을 대신하여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내가 자녀와 집안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했던 중압감이 엄청났던 것 같아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돈을 벌면서도 불안한 마음,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고 거의 매일 옷을 샀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것이 저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을 한 거 에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네요. 이 돈을 저축했으면 좋았을 것을...”

팔려고 내놓은 옷들을 보니 비슷비슷한 옷이 많습니다. 무작정 마음 가는대로 사다 쟁이다 보니 있는 아이템인줄 모르고 또 사고 또 사고 그랬노라고.

그렇게 여러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옷을 1000원 2000원에 기분 좋게 구매하고 돌아가고 나니 이분의 옷장이 한결 여유로워져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쯤 소장하고 싶었는데 값이 만만치 않아 평상시 살 엄두조차 나지 않던 이태리 가죽 자켓과 직접 입어보고 잘 입을 것 같은 티셔츠, 바지 몇 개를 신중하게 구매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장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언젠가 한번은 입을 거라 여기며 걸어두었는데 결국에는 수 년 동안 입지 않은 옷들, 50 넘은 나이에 입기에는 적잖이 남사스러운 반바지들과 원피스, 누군가에게서 감사함으로 받아놓고도 아이템이 같아서, 내게 어울리지 않아서 도무지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을 미련 없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주변 분들에게 연락하여 필요한 옷을 마음껏 골라 가시라 했더니 내게 필요 없는 옷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했던 아이템이 됩니다.

미니멀 라이프에 공감하며 뭔가를 마구 사들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누군가가 사랑의 마음으로 건네주면 무작정 받아 걸어놓은 옷들로 숨이 막히던 우리 집 옷장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정리를 하고 보니 초봄에 꽤나 즐겨 입었을 법 한 옷이 있는 줄 도 모르고 계절을 그냥 지났습니다. 비웠는데 이상하게 입을 옷이 더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텅 빈 옷걸이를 보면서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이상해요. 지금 제 마음이 이토록 평화로운 이유는 뭘까요!”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나 다 비워놓고도 마음이 평화로울 때이다’ 나승빈 시인의 ‘비움의 미학’이 유난히 공감이 되며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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