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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 사적지

유관순 열사의 생가에서 '1919년 4월 1일 3,000여명'의 함성을 들었다.

2024.03.14(목) 15:43:47모닝스타(gkgk20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우내독립만세운동
3,000여명이 외친 호서지방 최대 독립만세!!!
만세운동(1919년 4월 1일) 전날인 3월 31일 매봉산 봉화를 시작으로 전개되었다.

추모각~기념관~생가 까지 둘러 보았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태극기를 든 열사 앞에서 묵념을 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1902년 12월 16일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선교사 샤프 부인의 추천으로 공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 이화학당에 가서 신문학을 배우며 애국심을 키워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만세를 부르겠다고 학장에게 강하게 요청하였다.
총독부 휴교령으로 고향인 천안시 병천면에 내려와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우내 시위 때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순국하고 3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유 열사는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받았다.
열사는 항소를 하지 않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도 끓임 없는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로 인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열사는 체포 당시 상처와 고문으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는 비폭력 투쟁, 삼일 정신의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유관순열사와 천안의 역사에 대해 사적지에서 알게되었다.
천안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위해 태조산에 올라 도솔의 땅을 살펴보고 내린 이름이다.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백제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이 발전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면서 천원군과 분리하였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지금부터 따라 걷기를 해 보겠습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초혼묘 봉안 기념비문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순국 당시 모습 : 열일곱 살 처녀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순국자 추모각건립은 1993년 8월 15일 아우내기미독립운동기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병천 구미산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위패 합동봉안식과 추모제를 거행하였다.
2009년 8월에 완공하여 선열의 위패를 이곳에 봉안하여 편안히 모셨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추모각 올라가는 계단모습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추모각_충청남도 기념물 제88호

추모각은 열사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빛난 얼을 기리기위해 1972년에 건립하였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영정_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 제78호

3.1운동 다시 만세운동 직전에 나라를 걱정하는 표정과 의기에 찬 모습으로,
이화학당 교실에서 태극기 쥔 손을 무릎에 올려 놓은 모습으로 흰색 치마저고리, 갖신 등 철저한 고증을 거쳐재현했으며, 석천 윤여환 화백이 제작하여 2007년 2월 28일 봉안되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유관순열사의 영정을 1986년 8월 15일 8명의 장정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여 봉안할 때 사용한 가마이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관람객 방명록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추모각에서 내려다 본 천안시의 모습이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이곳이 기념관이다.

위대한 불꽃 유관순!
이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어린시절
총명하고 당찬아이, 유관순
매봉산 기슭, 지령리에서 태어난 유관순은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당찬 아이였다.
마을 아이들과 놀 적에는 우두머리가 되어 대장 노릇을 했으며,
장난을 좋아해 '장난꾼'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유관순은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성품으로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주는것을 좋아했고, 당당한 소녀 유관순!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지령리로 달려갑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천년에나 한번 씩 나타나는 크고 빛난 별이 바로 이곳에 내려와
일천구백이년 양력 십이월 십육일에 유관순으로 태어났다.

영원한 겨레의 별이 되었다.
박화성 짓고, 이철경쓰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대문 앞에 큰 나무 두 그루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매봉교회

매봉교회
유관순열사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로, 1908년 설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관순열사생가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일제에 핍박을 받아 1923년 폐쇄되었다가 1967년 유관순열사의 모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재건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98년 기독교대한감리교회 남부연회의 후원으로 새롭게 지은 것이다.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이며 지하 1층에 유관순열사의 전시관, 1층에 교육관과 사택, 2층에 예배공간이 있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뒷마당에 들어와 보니 노란 산수유가 만개하고, 장독대가 정겹게 있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아궁이를 들여다 보았다. 어릴적 보았던 불 지피는 아궁이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마을의 어른들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유관순 열사와 태극기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했다고 기록한 경성 복심법원의 판결문에 근거하여 연출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사립문을 통해 훤히 내다보이는 앞산

유관순열사 사적지 사진

자꾸만 열사의 집을 뒤돌아 보게 된다.
뜨거운 3,000여 함성과 뜨거운 애국심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유관순열사생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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