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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소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었다. 모처럼 개인 하늘 저끝에 한조각 작은 구름이 떠간다. 어느새 다가선 봄은 발끝에 지척이고, 감미로운 바람에 묻어 코끝을 간지른다.

2024.02.20(화) 23:03:45가람과 뫼(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심훈 선생 동상
▲ 심훈 선생 동상
 
심훈 기념관
▲ 심훈 기념관

독립운동가이시며 민족저항시인이시고,
소설가이시며 영화인이시고,
언론인이시기도 하신 선생의 자취를 찾아 필경사로 향하였다.

필경사(筆耕舍)는 말 그대로 '붓으로 밭을 일군다'라는 뜻이다.
선생께서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 하셨다가 일제에 의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구속되었다
그 후 집행유예로 나오시자, 선생께서는 상해로 건너가셔서 임시정부 인사인 이동녕 선생과
이시영선 들 곁에 3년여간 머물며 교류를 가지셨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1923년 귀국한 선생께서는
한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거쳐 신문기자로서 활동도 하셨고,
영화인으로도 활동을 하셨지만 날로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부모님이 계신 당진으로 낙향을 하셨다 한다.

낙향을 하신 후 아산만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위에
정면 5 칸, 측면 2 칸의 일자형태의 초가집을 지으셨다.
마침 아무도 계시지 않아 들어가지는 못하고 작은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 보니
아기자기한 구조와 실용성 있는 배치가 현대에 내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안방과 마루방 그리고 다락방의 조화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소환 하였고,
작은 창문의 턱은 따사로운 햇볕의 나른함을 불러 일으켰다.

직접 설계를 하시어 지으셨다는 필경사는 문학의 산실이 되어
그후 농촌 계몽 소설의 대표작인 '상록수'가 태어난 곳이 되었다.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상록수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인 박동혁은 선생의 장조카인 심재영이 모델이었고,
여주인공인 채영신은 여성 독립운동가이셨던 최용신이 실제 모델이었다 한다.
야학을 열어 농민 교육과 계몽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셨던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사셨던 선생의 뜻을 널리 알리고자 안산에서는 기념관을 세우고
선생의 유물과 기록을 보존 전시하고 있다.

필경사의 아담한 정원에는 소설속의 주인공을 이야기라도 하려는듯 예배당의 종과
그 곁에 서있는 동혁과 영신의 조형물이 아련한 눈빛으로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상록수 조형물
▲ 상록수 조형물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솔숲
▲ 솔숲

소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었다.
모처럼 개인 하늘 저끝에 한조각 작은 구름이 떠간다.
어느새 다가선 봄은 발끝에 지척이고,
감미로운 바람에 묻어 코끝을 간지른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
.................................................

중략
(심 훈 선생님의 '그날이 오면' 中)


'그날이 오면' 에서의 싯귀처럼
그렇게 조국의 광복을 간절하게 원하셨던 선생께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자
'오오 조선의 남아여' 라는 즉흥시를 마지막 작품으로 
요절 하셨다.

지금의 흑석동에서 태어나신 선생의 본관은 청송이며,
아호는 훈, 관명은 대섭 이다.
1901년 9월 12일 출생 하셨고, 1936년 9월 6일 졸(卒) 하셨다.

뒤늦게나마 선생의 자취를 돌아보며 고귀하신 님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모두 선생의  높은 뜻을 되돌아 봐야 되지 싶다...............
 
그날이 오면의 필경사를 찾아서......... 사진

시비
▲ 시비
 

당진 필경사
충남 당진시 상록수길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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