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라쓰카 운이치의 <백제의 옛 수도,1939년> 속 정림사지오측석탑
일본 판화 작가 히라쓰카 운이치의 <백제의 옛 수도, 1939년>을 보면 탑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당시 이 탑의 이름은 "평제탑"이었다.
평제탑, 나당연합이 백제를 평정하고 그 승전을 기념하는 비문을 새긴 탑.
글을 새긴 장수는 당나라의 소정방이다.
그렇게 탑은 백제의 멸망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까지
거의 천 년 동안 평제탑으로 불리며 서 있었다.
▲ 정림사 터와 정림사오층석탑을 증명한 기와
1942년 발굴 조사에서 어느 기와를 발견한다. 기와에 적힌 새겨진 "태평팔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
고려시대 이곳을 정림사라 불렸다는 내용이다.
백제 옛 수도에 덩그러니 서 있던 탑이 평제탑이 아닌 정림사의 탑이었던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절터는 정림사지 그리고 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으로 불렸다.
당나라의 승리를 기념하던 탑으로 불리던 정림사지오층석탑의 억울함이 풀렸다.
▲ 정림사지오층석탑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불국사에서 본 다보탑과 석가탑보다 두 배는 더 크다.그래서 봤을 때 생각보다 크고 웅장함에 내심 놀랍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자로 글이 쓰여 있는 게 보인다.
그 글이 평제탑이라고 불리게 했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쓴 <대당평백제국비명> 승전을 기념하는 글이다.
백제가 고구려에 쫓겨 웅진으로 내려오며 요새 같은 수도를 만들었다.
사비는 백제가 부흥하며 웅진이 좁아 옮겨 온 도시다.
이 시기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고 중국과 일본과 무역하며 고구려에게 뺏긴 한강 유역을 되찾을 만큼 국력이 강했다. 그런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 안의 정림사 어땠을까?▲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달
주말에 부여를 찾은 관광객이 제법 많이 찾아온다.
정림사지는 부여여행 대표 코스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을 구경하고 정림사지박물관을 본 다음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가는 게 이 코스다.
부여박물관을 먼저 방문해도 되지만 금동대향로를 마지막에 보는 게 여행의 피날레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정림사지를 먼저 보고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가는 코스로 정했다.
우리가 찾은 날엔 정림사지 보수공사 중으로 입장료가 무료였다.
공사 중이라 사진을 이쁘게 찍을 수 없었지만 관람하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작년에 왔을 땐 못 봤던 새로운 게 생겼다.
증강현실로 정림사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AR 망원경이다.
정림사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망원경 모드로 하면 줌을 해 볼 수 있다.정림사지박물관 전시관에 들어가면 처음 보이는 전시물이 바로 기와다.
이곳이 정림사였다는 걸 알게 해준 그 기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림사지박물관은 빔과 미디어영상을 정말 잘 활용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관람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정림사지를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1km도 안되는 거리라 차로 몇 분 걸리지 않게 도착했다.
제법 걸어 몸이 고단한 걸 느꼈다.
준비한 빵을 차에서 먹으며 힘을 회복했다.
빠르게 금동대향로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자이럴 수가. 금동대향로를 보려고 부여에 왔는데 금동대향로만 못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좋아 소풍 오기 좋았고
정림사지오층석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정림사지박물관이 재미있어서 다행이었다.
금동대향로는 다음에 다시 부여를 찾아와 보기로 했다.
정림사지박물관 정리사지5층석탑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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