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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알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

2023.01.23(월) 04:49:36희망굴뚝 ‘友樂’(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금치(牛禁峙)는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있는 고개로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왜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항전한 2차 동학농민운동의 최대 격전지입니다. 지역 사람들이 '우금티'로 부르고 있는 우금치 고갯길에는 2006년 완공된 왕복 4차선의 우금치터널이 들어서 있고, 그 인근에는 1994년 3월 17일에 사적으로 지정된 공주우금치전적이 자리해 있습니다.
 

우금티터널
▲ 국도 제40호선 위에는 2006년에 완공된 우금치터널이 있고, 그 일대에 공주우금티전적(공주시 우금티로 431-45)이 자리한다.

우금티전적으로 가는 길

우금치(우금티)는 산적이 많아 일몰 후 소를 몰고 고개를 넘다 소를 뺏기는 일이 잦자, 관에서 해가 저문 뒤 소를 몰고 고개를 넘지 못하도록 금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공주와 부여를 오갈 때면 '한번 둘러봐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며칠 전 짬이 나서 공주우금치전적으로 걸음을 옮겨 봤습니다. 우금치터널 옆 인도에는 여러 점의 시화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금티전적지알림터

우금티전적 알림터(041-854-4347)의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 추석 연휴 기간은 휴관한다.


주차 공간은 2020년 10월 말에 개관한 '우금티전적 알림터' 앞에 넓게 자리해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주차를 한 뒤 우금티전적알림터를 먼저 들를까 동학혁명위령탑을 먼저 돌아볼까 고민하다가 동학혁명위령탑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위쪽으로 오르는 길에 안내문이 보여 잠시 읽어 보았습니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 중심이 된 동학농민군이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내세우고 일어났으며, 9월에는 반봉건과 반외세를 외치며 충청도 일대의 동학농민군과 연합했다고 합니다.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는 동학농민군과 관군· 일본군에게 모두 중요한 장소였는데, 동학의 남· 북접 연합군은 충청감영을 공격하기 위해 공주로 진격하던 중 우금치고개(우금티고개)에서 치열하게 싸웠으나 끝내 패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금티전투는 큰 희생을 치르고 실패로 끝났지만, 우금티전적은 동학농민군이 마지막까지 목숨을 걸고 반봉건 농민운동을 벌인 장소로서 그 의의가 크게 여겨졌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탑

▲ 동학농민혁명기념탑:1985년, 한 사회단체에 의해 동학혁명과의 계승 관계 등 이념 갈등 소지가 있는 비문의 일부 문구(5.16,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 등)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탑 전면부

▲ 동학농민혁명기념탑 전면부
 

동학농민혁명기념탑 후면부

▲ 동학농민혁명기념탑 후면부


공주우금티전적의 가장 위쪽에 도착하니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1973년 11월 11일 천도교 산하 동학혁명위령탑건립위원회에 의해 동학혁명위령탑은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위령탑의 전· 후면에는 위령탑에 대한 설명과 도움을 주신 불들에 대한 감사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시비

▲ 시비


동학혁명위령탑을 둘러보고 나서 시비가 세워진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을 기념해서 1995년에 세워졌다고 하며, '자주·평등·대동 사상'의 염원을 담아 위령탑 앞에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에 새겼던 시비는 썩고 부서져 2021년에 공주시와 우금티기념사업회, 전국 각 지역 동학단체와 공주시민 220명에게 글자를 받아 돌에 새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전
▲ 사진전

동학혁명위령탑과 시비를 둘러보고는 '우금티전적 알림터'로 이동했습니다. 알림터 앞에는 여러 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이 알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 사진


그곳이 알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 사진

1987년 11월 공주지역의 시민운동가들과 시민단체들이 동학운동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동학운동의 최대 격전지인 '우금치(우금티)'에서 추모제례를 올리면서 매년 12월에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그곳이 알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 사진


그곳이 알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 사진


1993년 창립한 우금티동학혁명전적지성역화추진회(1995년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는 동학농민혁명과 공주 우금티전투의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고자 해마다 우금티추모예술제와 추모제례, 장승제, 거리행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학술· 편찬 사업, 청소년과 함께하는 역사축제, 공주동학답사, 주민과 함께하는 사적지 정비 사업을 하고 있다는데 사진전을 통해 그간의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기념 판화체험

▲ 우금티 판화체험


알림터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출입문 정면에는 주말에 체험이 가능한 '우금티 판화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한쪽에는 동학눙민운동과 관련한 전시 책자와 무료 책자가 비치돼 있었습니다.

공주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알림터 전시실과 영상관 관람은 무료이나, 사진 촬영을 허락받지 못해 전시실 내부는 소개하지 못한다. 알림터에 비치된 「공주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에 상세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간단히 방문자 명부를 작성하고 알림터 전시실로 들어서 봤습니다. 이인전투, 효포전투, 대교전투, 옥녀봉전투, 우금티전투, 송장배미산자락전투, 오실마을산자락전투 등 18일간의 공주전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금티전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3시경까지 1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500여 명만 남을 정도로 40~50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다고 하니,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어도 얼마나 치열했을지 당시 상황이 짐작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 한 해에 조선 땅에서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조선 민중은 3만~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큰 뜻을 두고 공주우금티전적을 돌아본 건 아니지만, 부패한 지배층과 일본 식민지 침략에 맞서다 스러져간 민초들의 슬프고 가슴 아픈 역사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하고 기억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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