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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던 선조들의 희생 정신을 되새기며...

2022.07.12(화) 11:45:34가는정(efu021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추모 마당

조선 시대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세도 정치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평등을 주장하던 게 동학이었지요. 그런 동학을 탄압하던 조선 정부에 맞서는 민중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전시관 입구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전국적으로 전파된 동학

동학은 모든 사람이 귀중하고 평등하다는 사상을 담고 있어 백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860년 경주에서 창도된 동학이 1880년대에는 충청도, 1890년대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조석헌 일기

동학농민혁명 당시 태안에서 파도접주* 로 활동한 조석헌이 쓴 일기입니다. 
1894년부터 1908년까지 본인이 동학농민혁명군으로 활동한 내용과 동학교단 재건에 힘쓴 내용 등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너무나 귀중한 자료입니다. 
* 접주 : 동학에서, 접(接)의 우두머리.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전주화약 

정부군과 동학농민군은 조선에 출병한 청군과 일본군이 주둔할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화약을 맺습니다. 정부군은 동학농민군의 요구안인 폐정개혁안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침입으로 동학농민혁명이 다시 일어나면서 이 합의는 파기되었습니다.
 
▲ 집강소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이 전주화약을 맺은 뒤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설치한 농민통치기구입니다. 그러나 2차 동학농민혁명에서 패함으로써 집강소 체제도 무너졌지만 당시 농민의 입장을 대표하면서 폐정개혁을 실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군 지방 자치 기구였다고 합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의 동학농민혁명

태안 지역은  바다와 비옥한 농토로 농수산물이 풍부해 다른 지방보다 수탈이 심했다고 합니다. 청나라군과 일본군의 횡포로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고 이로 인해 동학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태안관아에서는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이 어느 지방보다 더 가혹했다고 합니다.  태안 지역에는 1890년에 동학이 전파되었고 서산 지곡면 최형순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을 통해 동학에 입도. 서산과 태안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 교리를 전했습니다. 특히 원북면 방갈리와 이원면 포지리의 교세가 강했다고 합니다. 

* 유리관 속 자료

첫번째 : 문장로 교장 임명장(최시형이 문장로를 교장으로 임명)
두번째 : 문장로 차접주 임명장(최시형이 문장로를 대산 지역의 차접주로 임명)
세번째 : 문장로 수접주 임명장(손병희가 문장로를 태안 수접주로 임명)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영상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무기류
1 스나이더ㅡ일본군(영국제 소총)                                  5 죽창ㅡ동학농민군 사용
2 마우저 M1871ㅡ청나라군(독일제 제식소총)              6 화승총ㅡ동학농민군 사용
3 레밍턴 롤링블록ㅡ조선관군(미국제 제식소총)            7 칼ㅡ동학농민군 사용
4 무라타ㅡ일본군(일본제 제식소총)
[자료 출처 : 현장 안내문 발췌]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무기

우금치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무기의 차이였습니다.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스나이더소총, 기관총과 대포였으나 동학농민군의 주력 무기는 화승총이었습니다. 
화승총은 1592년 임진왜란에 사용했던 구식무기였습니다. 1894년 우금치 전투에서 우리 농민군은 1592년에 사용된 조총 외에 농기구로도 대적했습니다. 만일 농민군이 일본군과 같은 신식무기였다면 승패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한 마음 한 뜻으로 봉기를 들었던 농민들의 기세가 패배로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동학농민혁명 주역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동학농민혁명과 얽힌 이야기

동학농민혁명 당시 태안 지역 동학농민군과 가족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앞에 보이는 화면에 더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동학농민운동 의상

드라마 '녹두꽃'에서 사용된 의상인 것 같습니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각 의상들이 오른쪽 아래 영상 속에 등장하네요.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의상 체험 1

동학군과 관군의 의상 그리고 소품인 조총이 함께 비치되어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의상 체험 2, 디지털 포토존 1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디지털 포토존 2

필자도 직접 찍어보았습니다. '한국어'로 설정하는 것 잊지 마세요. 저는 중국어 설정이었네요^^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동학농민혁명 역사 유적 VR 탐방 코너

컨트롤러를 사용하여 VR속 화면에 보이는 [체험하기]버튼을 선택합니다.  탐방하고 싶은 유적지를 선택하여 진행하면 됩니다. VR속 세상은 현실과는 다른 색다른 공간으로서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드라마 '녹두꽃' 영상 화면(좌측)과 추모 공간(우측)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2019년 작 '녹두꽃'의 영상도 함께 띄워져 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를 그린 드라마ㅡ출처 : 공식홈페이지>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태안지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연혁 1960년대 ~ 2010년대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2층 휴게실

현재 이 곳에서는 '컵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체험프로그램>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2022년 6월 28일 ~ 8월 7일(기획전시기간 무료 운영)
ㅡ장소 :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2층 휴게실
ㅡ운영시간 : 10:00~17:00(매주 월요일 휴관)
ㅡ참여대상 : 5세 이상 누구나(10인이상 단체 참여시 사전예약 필요)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야외 옥상 정원

2층 휴게실에는 야외 옥상 정원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 가는 길 

야외 옥상 정원으로 나오면 백화산 입구와 함께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과 교장바위로 갈 수 있는 길이 연결됩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항전지인 '백화산'에 자리하고 있는 추모탑을 볼 수 있습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

이 추모탑 또한 우리 선조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지요.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태안지역동학전래비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동학농민군 지도자 피체지

이곳은 동학농민군이 주둔하였고 그 지도자들이 체포된 곳이다. 1894년 11월 이 곳 태안 백화산에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관군이 몰려와 동학농민군 지도자인 유규희 최성서 최성일 안순칠 피만석을 체포하고 그들을 압송해 갔다. 이 내용은 순무영 선봉장 이규태가 정리한 [순무사정보첩]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비석을 세워 동학농민군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 자료출처 : 비석글 옮김]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교장바위 1       [자료 출처 : 오마이뉴스 김동이 기자 기사 사진 발췌 2021. 08. 13.]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교장바위 2

먼저 추모탑을 사진에 담은 후 표지판을 따라 교장바위를 찾아보았지만 헤매기만 하고 못찾았습니다. 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탑 바로 뒤에 보이는 바위였다는 걸 알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교장 바위 유래>
기념사업회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목을 졸려 죽임을 당하고 몽둥이로 맞아죽었고, 무참하게 학살된 통한의 바위로 목을 졸라 죽인다는 '교살(絞殺)'과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장살(杖殺)'을 줄여 교장(絞杖) 바위라고 이름 지어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부 향토사학자는 일제강점기 태안보통학교의 교장이었던 나카오 이따로(中尾猪太郞)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바위 한쪽 구석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며, 학교장의 교장(校長)바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장바위는 그 유래를 두고 여러 차례 입길에 올랐다. 
[자료 출처 : 오마이뉴스 김동이 기자 기사 글과 사진 발췌 2021. 08. 13.]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기획전시실 1.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1층(2022. 6.10. ~ 8. 7.)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기획전시실 2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기획전시실 3

전국에서 세 번째로 충남 태안에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개관식 2021. 10. 22.)
태안은 내포지역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항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학의 창시자 겸 제1대 교주 최제우, 제2대 교주 최시형, 제3대 교주 손병희,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과 민중들. 
혼란스러운 시기에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백성들이 스스로 일으킨 역사적 사건이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동시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하던 동학. 평범한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 만일 동학농민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세계사에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역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던 선조들의 희생 정신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 주소 : 충남 태안군 태안읍 성안1길 28-23(남문리 380-3)
·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17:30분 이후 입장 불가
  동절기(11월~2월) 09:00~17:00   *16:30분 이후 입장 불가
· 휴관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1월1일, 추석 당일 
· 관람료 : 무료
· 전시해설시간 : 11시, 2시, 4시(단체관람 신청시 사전협의를 통해 전시해설 가능)
· 관람문의 : 041-670-5967
· 주차안내 
  이용대수 - 기념관 주차장 9대, 장애인 주차장 2대
  이용요금 - 무료(기념관의 주차장이 협소하여 길 건너 공영주차장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단체관람문의 : 20인 이상의 단체관람일 경우 관람 2일 전 유선 등을 통해 사전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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