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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와 보리감자

이명재의 농업 관련 충청 사투리- 감자

2022.04.06(수) 14:40:18도정신문(scottju@korea.kr)

보릿고개와 보리감자 사진



“보릿고개서 사람덜을 살려준 것이 보리감자여. 시방은 감자라구 허지.” 200년 전, 대마도에서 들어온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일본말 고구마가 낯선 백성들은 ‘감자’라는 말을 만들어 썼다. ‘감자(甘藷)’는 ‘달콤한 덩이뿌리’란 말이다. 

감자(고구마)는 소출이 많아 가난한 백성들의 배고픔을 덜어 주었다. 이에 감자(고구마)는 짧은 기간에 널리 퍼졌다. 그런데 고구마가 들어온 지 몇십 년도 되기 전에 만주에서 ‘감자’가 들어왔다. 

지금은 고구마와 감자가 전혀 다른 작물이지만, 예전에는 아주 닮은 작물로 인식되었다. 소출이 많아 백성의 허기를 채워주는 작물이었고, 땅속의 덩이를 캐 먹는다는 점이 닮았다. 그래서 충청 백성들은 그것을 ‘보리감자’라 불렀다. 보리가 익을 때 수확하는 감자란 뜻이다. 학식 있는 이들은 ‘하짓감자’라 했다. 절기상 ‘하지(夏至)’에 수확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달리 ‘여름감자’라고도 불렀다. 이는 여름에 캐는 ‘감자’란 말이고, 가을에 캐 는 ‘갈감자(고구마)’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1960년대까지 이어졌던 보릿고개는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였다. 지난가을에 추수한 곡식들은 겨우내 없어졌다. 봄이면 먹을 것이 없어 들나물과 산나물을 뜯으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보리가 익을 때까지는 굶주림이 일상이었다. 

충청의 백성들은 보리 익기만 기다렸다. 감자잎이 누렇게 시들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5월이 가고 6월이 지나면서 보리가 익었다. 둥그런 감자들이 땅속에 자랐다. 배고픔의 끝에서 보리와 감자는 긴 여름날의 양식이 되었다. 그래서 충청 백성들은 ‘보리감자’란 말을 가장 많이 썼다.     
/이명재 충청언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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