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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2021.05.24(월) 22:26:44만석꾼(rlaakstjr6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 사람들에게 올해가 무슨 해인지 물어보면 금세 대답이 나온다. 올해 2021년은 백제 제25대 무령왕의 무덤이 약 1500년 만에 발굴된 50주년 되는 해이다. 지난 1971년에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이 발굴됐으니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고 그 기쁨과 경사스러움을 온 나라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해이다.
 
꼭 반세기가 흘렀다. 역사학자들은 무령왕릉 발굴을 일컬어 한국 고고 역사학을 바꾼 기념비적 사건이라고도 말한다. 실로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쏟아졌고, 그 안에는 국보와 보물이 무더기로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지석, 즉 4각형 돌판에 “이 무덤은 백제 25대 왕 무령의 무덤”이라고 새겨진 그게 함께 나왔으니 구구절절 누구의 묘인지, 유물이 어떤 의미인지 등을 따질 필요도 없는 그런 발굴이었다.

진정 1500년 전에 이미 그 훗날의 후손들을 위해 이런 위대한 유물과 기록을 남겨 주신 백제의 조상들에게 감사 또 감사를 전해 올린다.
 
오늘, 1500년전 이땅을 지배하며 후손들에게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신 백제 25대 무령왕이 잠들어 계시던 송산리고분군의 50년전 발굴현장을 국립 공주박물관 전시실 사진을 통해 독자분들께 소개해 드린다.
사진 모두 흑백이 주는 묘한 정감도 크게 맛볼수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송산리 고분군 전경인데 맨 위 사진 저기 오른쪽 문이 보이는 그것이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이곳, 송산리 고분군의 여러 무덤 중 그 무령왕릉 입구다. 지금은 문화재 현장 보존을 위해 사실상 영구 봉인된 상태여서 들어갈 수 없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송산리 고분군 위쪽에서 아랫쪽을 내려다 본 모습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송산리고분군과 무령왕릉 무덤까지 봤으니 이제는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50년 전 당시 무령왕릉 발굴 현장을 보자.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박물관 앞마당 전경

저기 1500년 전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라는 신비의 동물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박물관을 떡하니 지키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이분이 무령왕이시다.

키가 8척이고 눈매가 그림같고 인자한 모습이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무령왕을 생각해 볼수 있다.

정말 어떻게 이런 기록들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셨는지 실로 고맙고 위대한 선조들이시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박물관 내부 전경.

남녀 관람객들이 방역수칙을 지키며 둘러보는 모습도 보인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이 사진은 발굴 한참 전인 1933년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의 전경이다.

앞에는 작은 촌락이 형성돼 초가집들이 보이고, 뒤에 보이는 구릉 같은 산이 무령왕릉의 송산리고분군이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무령왕릉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기 직전, 현실 널문 앞모습.

저기 얇고 넓은 벽돌같은 것이 층층이 쌓여있는게 무령왕릉 입구 모습이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무령왕릉 개봉에 앞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위령제를 마치고 널문 앞 무령왕릉 입구에 서 있다.

얼마나 가슴이 뛰고 두근거렸을까. 1500년전 누구의 무덤이 이곳에서 후손들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자, 이제 발굴 시~작! 맨 앞의 막음벽돌 제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막음벽돌을 제거하고 안에 들어가 보니...
제일 먼저 왕릉 입구를 막아선 이것은? 동물이다. 그런데 무슨 동물일까.
상상의 동물 진묘수라는 동물이고, 지금은 이래뵈도 국보로 지정된 몸이다.
후손들은 이 진묘수를 일컬어 무령왕릉을 일제 강점기에 왜놈들로부터 지켜낸 수호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진묘수를 대형 크기로 만들어 박물관 앞에 설치한 모형.

이 진묘수가 이제는 국립 공주박물관을 지켜주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유물이 쏟아져 발굴자들이 놀라고 경탄하며 수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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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인 왕과 왕비의 베개가 관 안에 남아있는 모습.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이 베개를 원형으로 복원해 보니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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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 현실 벽면에는 왕을 지키며 불을 밝혔을 등잔이 놓여져 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사를 사진으로 보다 사진
▲ 무덤방 바닥 중앙에 유물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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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자들이 기초 조사와 발굴을 하면서 유물을 모두 수습한 뒤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입구를 막고 있는 모습.

자, 이제 발굴이 끝났다.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던 인부의 삽에 뭔가 걸리면서 그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일제 때 도굴을 피해 살아남았고, 삼국시대 신분이 확인된 유일한 왕릉으로도 꼽힌다.
무령왕릉에서는 총 17점의 국보가 나왔는데, 단일 무덤에서 이렇게 나온 경우가 없다는 것도 무령왕릉의 자랑거리다.

그중 첫 손에 꼽는 게 앞에서 말한 지석(국보 163호로 묘지석, 능석)이다. 이 무덤이 무령왕 부부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록해 놓은 그 돌판은 삼국시대 고고학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며 고미술사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령왕릉 발굴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2년 뒤 신라 천마총 발굴 때는 더욱 섬세하고 차분하게 온전히 발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선조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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