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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가영현의 명품고택이 말하는 것들

역사의 생명을 잇닿게 하는 식물들의 땅, 그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

2021.05.02(일) 12:45:55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곡우(穀雨)가 지나 입하(立夏)가 가까워지니 땅은 부풀어 오르고, 나무들은 겨울 동안 감추어둔 자신의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곡우(穀雨)란 24절기 중 여섯 번째 날로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는 절기이며 태양의 황경이 30°인 날이다. 곡우에서 입하로 흐르는 시간 속에는 봄과 여름이 함께 어우러져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니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

곡우의 의미는 봄비(雨)가 내려서 곡식(穀)을 기름지게 하고, 입하(立夏)는 활짝 핀 꽃을 즐기고 완숙한 차를 마시며 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봄바람에 부풀어 오른 땅은, 곡우에 내린 빗속의 자양분으로 흙을 깨우고 땅속의 생명들을 소생시켜서 지상으로 밀어낸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맘때에는 땅속의 것들만 바쁜 것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근본으로 삼고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농부들에게는 삶의 리듬이며 간절한 희망이기도 하다.

상옥리 마을 과수원의 5월 풍경

▲ 상옥리 마을 과수원의 5월 풍경

곡우가 지나면 우리나라 최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흑산도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에 속한 격렬비열도를 지나 백령도 근해로 새끼를 낳으러 간다. 이때 태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를  '곡우살이'라고 하는데 맛이 연하고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지금이 바로 곡우살이를 맛볼 수 있는 계절이다.

조선시대 문인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조기를 “석수어에 속하는 어류로서 추수어 속명 조기(曹機)”라 하였다. 추수어 중 조금 큰 것을 보구치(甫九峙), 조금 작은 것을 반애(盤厓), 가장 작은 것을 황석어(黃石魚)라고 부른다. 

고려시대의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왕을 모해하려다가 탄로 되어 1126년(인종 4) 정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굴비를 먹어 보고는 그 맛을 모르고 개경(開京)에 살았던 것을 후회하였을 정도로 맛이 좋다.

곡우살이 조기모습

▲ 곡우살이 조기모습

충남 지역에서는 곡우에 볍씨를 논에 직접 뿌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못자리를 만들지 않고 볍씨를 논에 직파하는 것을 ‘곡우 낙종’이라고 부른다. 벼는 한해살이 식용작물이다. 벼 생산의 90%가 아시아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가 그중에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벼에는 탄수화물(80%)과 단백질, 지방 같은 영양분을 품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주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벼 품종을 분류할 때는 지리적 품종군·생태종·생태형으로 나누기도 하고 재배적 특성 또는 용도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71년 통일 품종이 육성된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통일벼·유신벼·밀양23호·삼강벼 등 통일형 품종이 주로 재배되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추청벼·동진벼·화성벼·일품벼 등 양질의 다수성 일본형 품종이 육성되어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 이전인 1955년에는 농가 인구가 총 인구의 75.5%를 차지하였으나 60년대 이후 근대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농가 인구는 크게 감소하였다. 실제로 농가 인구의 비중이 1970년 45.7%, 1980년 28.4%, 1992년 13.1%, 2004년 7.1%, 2019년 4.3%(약 224만 명)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자연속에 위치한 명품고택

▲ 자연속에 위치한 명품고택

자연 속에 있는 자연의 집을 구경하기에는 오늘같이 좋은 날이 없다. 태안읍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5㎞ 정도 가다 보면 햇살이 비추는 곳에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의 음률(音律)에 몸을 맡기고 흔들거리고 있다. 여기가 '상옥리'라고 불리는 마을인데, 백화산의 동향사면 하단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7호(2001. 6. 30)로 지정된 가영현 고택이 있다. 가영현 고택은 상옥 1리 정미소에서 흥주사 방면과 도내리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개설된 농로를 따라 약 600여 m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상옥리 마을에서 보이는 가영현 고택 이정표

▲ 상옥리 마을에서 보이는 가영현 고택 이정표

상옥리는 조선 중엽에 태안군의 동이도면 관하에 속했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을 실시하여 상옥리가 되었다. 상옥리 마을에는 입향 성씨로 ‘가’씨들이 많은데, 유명한 인물로는 가명로(賈明魯)를 들 수 있다. 그는 소주(蘇州) ‘가’씨로서 태안읍 상옥리에서 출생했으나 생졸연대는 미상이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니 마침 국내에서는 방방곡곡에서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매일같이 마을을 돌면서 가명로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았지만, 평소부터 마음속의 항일의식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자기 처가 일본 경찰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보고 이에 격분하여 칼을 들고나가 일본 경찰을 살해하여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나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태안군지)

배산임수의 가영현 고택이 배나무 속에 숨어있다.

▲ 배산임수의 가영현 고택이 배나무 속에 숨어있다.

고택은 배산임수가 되는 주변 경관이 수려한 곳에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거의 튼 ㅁ자형을 이루면서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되었는데, 대청 좌측에는 앞쪽으로 함실과 다락이 달린 온돌방을 들였다. 대청의 우측으로는 전퇴(前退)가 달린 2칸의 방과 부엌, 창고가 있고 창고 앞에 안채로 다니는 중문(中門)이 나있다. 안채 앞에 있는 사랑채는 정면 6칸 가운데 중문의 좌측으로는 방과 헛간이 있으며, 그 우측 3칸에는 방과 난간이 설치된 누(樓) 마루를 들여 가장이 주로 사용하는 사랑방으로 사용하였다. 화강석재의 장대석으로 기단을 축조한 후 안채에서는 네모뿔형 주초석을, 사랑채에서는 덤벙 주초석을 놓아 방형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는 들집 계통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가구는 사량四樑집으로 구성하였는데, 1989년에 부분적으로 옛 자재를 사용하여 다시 초가집으로 복원하여 전통건축물 4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 서산·태안 문화유적, 하권 (瑞山·泰安 文化遺蹟)」

가영현 고택의 정문 모습

▲ 가영현 고택의 정면 모습

230년이 넘은 초가집 가영현 가옥은 근래까지 후손 가대현이 생활을 하다가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명품고택으로 초가집 체험장으로 운영을 하기 위한 것이다. 태안군이 2014년 쯤 '고택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고가구를 들여놓기로 했다. 숙박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고가구의 종류는 이층장에서부터 책장, 문갑, 사방탁자, 반닫이, 경상, 연상, 병풍, 차탁, 찬탁에 이르기까지 꽤나 부피가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고가구를 고택의 숙박동에 들여놓으면 체험객들이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고가구들은 무형문화재 소목장이 운영하고 있는 공예점 작품들로서 4,850만 원에 달하는 예산이며, 국비 2,500만 원과 군비 2,350만 원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대청마루에 고가구가 먼지속에 의미없이 놓여있다

▲ 대청마루에 고가구가 먼지속에 의미없이 놓여있다

우리의 옛것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사업의 의도는 좋았으나 실용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보여주기 식 예산편성은 곧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안된 지금의 명품고택은 퇴색되어가고 있는 오래된 옛날 초가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고택의 주인이었던 가영현은 1930년 쯤 상옥리 최씨한테 이 집을 구입했다고 한다. 최씨는 농사꾼인데, 18세기 후기 야산을 뒤로한 이 집은 동남향 약 260㎡(79평)의 초가이니 대단히 큰 규모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두이자형(二字型), 문간채는 서쪽으로 배치된 입구자형(口字型) 모양의 전형적인 시골 부농의 집이다. 몸체 건립 연대는 18세기 말로 보이지만, 겉 채는 민가의 간이식 덧붙이기 구조법으로 차츰 덧붙여지었으며, 문간채는 1940년에 마지막으로 지어 성장해 가는 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랑마루의 아자형(亞字型) 난간이 초가집의 난간이란 의미에서 재미를 더해준다.

입구자형 모양의 고택 내부

▲ 입구자형 모양의 고택 내부


조선시대 주거형태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전부였다. 기와집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고 초가집은 가난의 상징으로 알고 있었는데, 초가집으로도 이런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부유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농업과 어업으로만 고달픈 삶을 유지했던 그 시절에 이러한 명품고택은 또 다른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과거의 오랜 시간 속에 잠들어있던 고달픈 농부들의 삶이 안채의 대청마루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농부의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 농부의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현대인들은 농부들의 고단한 과거를 다시 체험하려고 이 고택을 찾는다. 몇 년 전에도 도시에서 내려온 체험객들이 가영현 고택 앞 밭에서 감자를 캐고, 마늘종을 뽑고 있었다. 잠시 후 마당과 마루에서 고기를 굽고 구운 감자를 먹으며 즐겁게 웃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은 듯 하다. 200여 년 전 사람들의 모습도 저렇게 즐겁게 웃으면서 농사를 지었을까? 과거를 체험하려고 온 사람들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과의 사이에서 괴리감을 품고 있는 '가영현 명품고택'은 쓸쓸해 보였다.

명품고택의 측면 모습

▲ 명품고택의 측면 모습


인간이 식물을 지배할 수 없고, 식물은 땅을 지배할 수 없으며, 땅은 자연을 지배할 수 없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들의 생명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명과는 다르다. 식물들의 생명을 키워내는 시원(始原)은 형이하학적이며 원칙적인 것으로 생명과 바람과 태양과 빗방울을 품고 있는 흙이다. 하지만, 동물들이 생명은 오로지 식물들의 땅에서 식물들이 내어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동물들의 마지막은 땅 속에 묻혀서 식물들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들의 땅은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신묘하게 우리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고택의 뒷 뜰에서 바라본 풍경

▲ 고택의 뒷 뜰에서 바라본 풍경


식물들은 자신의 생명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여 땅의 심장에 뿌리를 내리고는 자신의 품종을 완성하기 위해 땅 위서 초록의 새싹으로 태어난다. 식물들의 초록은 인간의 생명과 동색이다. 인간이 땅에게 감사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이다. 땅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경제학이 말하는 '부의 기원'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지적도의 선과 숫자로 이기주의를 확대해서도 안 된다. 식물들의 땅을 인간이 점유하고 그들만의 이기주의로 생태계 피라미드를 만들어 가는 것은, 북망산천으로 가는 상여의 앞에서 들리는 요령 소리처럼 구슬프게 느껴진다.

명품고택임을 알리는 표지판

▲ 명품고택임을 알리는 표지판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글이 있다. 천하의 근본이 되는 농업을 체험하고, 오래된 초가집 고택을 체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족과 함께 현재에서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니, 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체험하는 것이어서 더욱 즐거울 것이다. 체험해서 얻은 수확물을 맛있게 먹고, 명품고택에서 잠을 자며 200년 전 고단한 농부의 꿈을 꾸어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체험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고택의 방 문

▲ 체험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고택의 3중 방 문


우리는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면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품고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그리고 명품고택을 이루었던 옛 주인의 탈속한 체취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나가야 한다. 그 옛 모습의 원형이라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는 결핍 속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이 아닐까 한다.

소중한 시간의 흔적들

▲ 소중한 시간의 흔적들


가영현의 명품고택은 오랜 과거의 느낌을 체함 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미래의 부유한 농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태안군은 많은 예산을 들여서 비싼 고가구들을 들여놓고, 새로운 건축물들을 짓기보다는 원형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보기 좋은 체험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여 체험하는 사람들이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부뚜막과 가마솥이 보기만 해도 정겹다

▲ 부뚜막과 가마솥이 보기만 해도 정겹다


대청마루와 방안에 놓여있는 무형문화재 소목장이 만든 값비싼 고가구 위에 쌓이는 먼지들만큼, 체험객들에게 다가오는 가영현 명품고택의 사실성은 희석되고 있었다. 돈으로 희석되는 역사의 유물만큼 군민들의 마음에도 지자체에 대한 신뢰가 아득해 보인다.

명품고택의 구조물을 이루는 선들이 아름답다

▲ 명품고택의 구조물을 이루는 선들이 아름답다


충남 화이팅!! 태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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