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여행

충남넷 미디어 > 통통충남 > 여행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2021.02.01(월) 10:27:41마패(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 아라메길 2구간 출발 지점인 해미순교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백여 년의 세월동안 사교라는 오명과 유교의 오랜 병폐인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수천 명의 양민들이 무차별하게 참살을 당했던 여숫골에 조성된 순례성지로 2014년 프란치스코교황이 방문해서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뜨는 산'이라는 의미로 '해뫼'라 불리던 해미읍성을 관장하던 진영장은 내포일원의 해안 국토수비와 함께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1801년 신유박해·1839년 기해박해·1846년 병오박해·1866년 병인박해 등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여 년 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악명을 떨쳤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읍성의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성지유적인 해미순교성지는 생매장했던 흔적이 전해지는 여숫골과 교인들을 볏단처럼 자리개질하여 돌에 내리쳐 죽였던 자리개돌,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매달아서 고문을 했던 호야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있는 해미읍성이 자리잡고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가 조성된 여숫골 표지석 뒤편으로 해미 천주교 박해의 현장을 재현한 진둠벙이 조성되어 있는데, 진둠벙 앞에 '죄인둠벙'이라는 부가설명과 함께 팔을 묶어 끌고 온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 둠벙 속에서 죽게 하였다는 안내비석이 세워져 있어서 그 당시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논이나 밭을 갈던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때 뼈들이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되어 사람을 산 채로 생매장한 천주교 박해의 실상을 아프게 전해주고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 지도 하에 일제강점기인 1935년 순교지인 해미읍성 서문밖 생매장지 유해 발굴 때 수습된 유해 일부와 유품 성물은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로 모셨다가 1995년 9월 20일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로 안장하고 유해 발굴지 인근인 하천 옆에 1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순교탑이 세워졌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예수 마리아!'라는 기도 소리가 울려 퍼져서 '여수머리'로 불리다가 '여숫골'이라 불리게 된 해미순교성지는 천주교 교인들과 서산시민들의 뜻을 모아 2000년 8월 기공식을 하였고, 2003년 6월 17일 준공되어 대성당과 소성당이 조성되었고 기념관(유해참배실)·자리개돌·진둠벙·노천성당·복자상·무명순교자의묘·순교탑·야외제대·유해발굴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유해참배실이라고 불리는 해미순교성지기념관 안에는 줄줄이 묶여서 끌려가던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과 박해받던 참상들을 기록한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 당시 남기신 ‘순교자들의 모법을 따라서 우리가 신앙의 증거자가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앞에는 해미순교 당시 순교하셔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당시 복자로 시복된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 복자 이보현 프란치스코, 복자 김진후 비오의 시복을 기념하는 시복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 입구 왼편에는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스텐레스 스틸 위 도장 황등석·마천석으로 마감한 생명의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생명의나무에 새겼고 기단석은 서산시의 지형을 형상화하였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 입구 오른편에는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설치한 생명의 책이 자리잡고 있는데 해미순교성지에서 이루어진 아시아주교들과의 만남에서 말씀하신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조형물이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충남 서산시의 바다와 산을 따라 이어지는 아라메길 2구간은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와 아픔이 서려 있는 해미순교성지에서 시작되는 도보 순례길로 해미순교성지에서 시작해 대치2리 입구에서 끝난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성지1로 13
-041-688-3183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아라메길 2구간 해미순교성지에서 이어지는 코스인 해미읍성 한가운데에는 호야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서 있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병인대박해 당시에 조정에 보고된 해미 진영에서 처결된 천주교 신자가 1천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 박해가 자행된 해미읍성 안에 자리잡은 두 채의 큰 감옥에는 한티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서 끌려온 천주교인들로 항상 가득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하여 세종 3년(1421)에 완성된 성이다. 한때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이 선조 12년(1578)에 훈련원봉사로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읍성은 성곽길이 1,800m, 높이 5m, 면적 60,000여 평으로 평시에는 행정중심지가 되고 비상시에는 방어기지가 되었던 전천후 기지 성격을 지닌 성이다.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해미읍성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40-1

서산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와 충청병마절도사영 해미읍성 호야나무 사진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