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여행

충남넷 미디어 > 통통충남 > 여행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2021.01.13(수) 08:09:07서영love(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돈암서원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고 하였을 때 처음 광산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알기 시작하면서 논산에서 광산김씨가 뿌리를 내린 것이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눈이 내린 날 찾은 논산의 고정리라는 곳은 한적한 시골마을 그 자체였습니다. 마을 입구에 고목이 있고 눈이 내린 곳에 하얗게 펼쳐진 설원이 논산다운 그런 느낌을 부여하는 곳입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정려는 마을에서 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김장생의 7대 할머니인 양천허씨는 광산김씨 가문에 출가했다가 17세에 남편을 잃었지만 아들을 홀로 휼륭히 키워냈다고 합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1455년 허씨가 죽은 뒤 그 정절이 널리 알려져 1467년 정려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김장생 종가 인근에는 이 양천허씨의 재실인 논산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연산 영사재는 김극뉴(1436∼1496)의 처 의령남씨를 제사지내는 곳으로, 200여년 전 세워졌습니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 특징입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대문 안으로 보이는 영사재가 고즈적하게 저를 맞아주고 있습니다. 내린 눈은 길을 만들어서 쓸어두었습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광산김씨인 김극뉴의 묘는 순창에 있지만 그의 처 의령남씨의 묘는 연산 영사재의 뒤편 구릉의 동향 사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남편과 부인이 따로 묘를 두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순창의 묘자리가 명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많은 인물을 배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저 문을 통과해서 뒤로 가면 묘소가 나옵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저 언덕에 자리한 것은 1400년(정종 2) 문하부좌산기(門下府左散騎)로 있을 때에는 훈친(勳親)들에게 사병을 허여하는 제도를 없애고, 병권을 모두 중앙에 집중시키자고 역설하여 단행하게 하였으며, 그 뒤 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1404년(태종 4) 충청도도관찰출척사(忠淸道都觀察黜陟使)를 지냈던 김약채의 사당인 숭원재라고 합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묘소가 보이는데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논산의 유명한 광산김씨 집성촌 연산 영사재에 가(家)보자 사진
 
조용히 연산 영사재라는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논산에 집성촌을 이루게 된 광산김씨는 김약채가 처음 이곳 연산면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한 이야기 중 그가 관찰사가 되었을 때 치소(治所)는 청주였으며 관내를 순시하다 계룡산 남서쪽 연산 땅에 들어서 보니 산세가 순하고 토지가 넓고 비옥하여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