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여행

충남넷 미디어 > 통통충남 > 여행

우리나라 최초 운하(運河) 안면도

충청이 품은 섬 이야기(31)안면도

2020.12.24(목) 16:03:37도정신문(deun127@korea.kr)

안면도 백사장 항 전경

▲ 안면도 백사장 항 전경



수려한 자연경관, 해송 ‘인기’
1970년 태안 잇는 다리 개통

 
태안반도 남단과 연결되어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동쪽 해안은 천수만이고, 북동쪽 황도와는 황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해안은드나듦이 복잡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시에는간석지가 넓게 펼쳐지며, 간척지는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된다.

본래 안면도는 반도로서, 육지인 남면과 이어져 있었는데, 삼남지역의조곡을 운반하던 풍선들이 풍랑에 유실되는 곡물 등이 많이 유실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가장 조곡선의 난파가 심했던 지역인 태안반도의 안면곶을 굴착 섬으로 만든다, 조선 인조 16년 (1638년)에 안면곶을 착항해서 지금의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의 창기리서 이때부터 안면곳이 섬이 되어 오늘의 안면도가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사건과 자연 지리적인 여건으로 안면도는 17세기부터 20세기 1970년까지 무려 330여년간 육지와는 떨어진 섬으로 그 섬안에 살던 사람들은 힘든 고통을 감래해야 했던 역사의 뒤안길에 쌓인 아픈 섬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육계도 섬이다. 그러니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運河) 인 셈이다. 안면도에는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는 14개 해수욕장(꽃지,방포,삼봉,백사장,바람아래해수욕장 등) 안면읍의 상징인 해송을 마음껏 감상하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안면도 자연휴양림, 모감주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제138호) 등이 있다.

서해안의 태안반도 근해는 세곡선과 화물선들이 침몰해서 지금도 수많은 청자들이 나오고 있다. 풍선의 침몰사고가 고려, 조선, 해방 후까지 동력선이 없다 시절에 사고가 많이 있었다. 사고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 시절 세곡선 사고가 많이 났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태안반도의 굴포 운하와 안면도 운하를 만든 것이다. 운하 건설은 고려, 조선시대에 국가적인 숙원 사업이었지만 굴포 운하는 11차례나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안면도 운하를 건설하여 세곡선의 손실을 막았지만 근본적인 안전은 담보할 수 없었다. 서해안을 통과하면 사고가 많이나서 안면도 운하를 건설한 후에 천수만으로 자유롭게 항해하여 한양으로 갔다. 이에 따라 안면도는 반도가아닌 섬이 되었고조운선의 항로는 원산도-쌀썩은여-안흥량-광장목으로 갔는데 원산도, 천수만, 안면도, 안흥량, 관장목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재언(목포과학대 섬해양연구원)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