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이름 참 예쁘다, 꽃지

지명에 담긴 우리 선조님들의 선견지명에 놀라다

2020.08.08(토) 17:51:41나드리(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방포항 쪽에서 꽃지해변을 바라 본 모습
▲방포항 쪽에서 꽃지해변을 바라본 모습
 
이름 참 예쁘다, 꽃지.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꽃지라는 지명이 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안면도가 아니라 안면곶인 반도로서 남면과 연륙되어 있었는데, 조선 인조대왕 시절에 세곡선이 바다에 침몰하는 것을 막으려고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읍 남면 신온리 사이를 절단함으로써 안면곶이 섬이 되어 안면도라고 호칭하게 되었지요. "여지도서"에 의하면 18세기 중엽의 승언리는 103호로 안면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고 지금도 번화가입니다.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태안군 안상면의 관할구역에 속했다가, 1980년 12월 1일 대통령령 제1005호에 따라 안면읍으로 승격되었고, 1989년 1월 1일 태안이 서산군에서 분리됨에 따라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태안군 지도 일부와 안면도 꽃지 주변을 확대한 지도
▲태안군 지도 일부와 안면도 꽃지 주변을 확대한 지도
 
'꽃의 땅' 꽃지에서는 2002년 4월부터 한 달 동안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열려 30여 국가에서 1300여 종의 꽃과 나무를 전시하여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었던 곳이니 우리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이 놀랍습니다.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들이 서로가 잘났다고 뽐내고, 꽃과 나무들의 잘난 척에 우리 국민들은 한 달 동안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꽃과 나무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었습니다. 
 
튤립꽃이 형형색색 전시된 2002년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
▲튤립꽃이 형형색색 전시된 2002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안면도 꽃지의 국제꽃박람회는 우리 국민들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어낸 메인 경기의 전야제였던 것입니다.
 
남대문을 꽃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모습
▲남대문을 꽃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모습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를 위해서 붉은 악마가 된 우리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치며 함성을 지르고 붉은 물결의 감동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목이 쉬어도 즐거웠고, 잠을 못 자도 피곤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2002년은, 코로나19 팬데믹과 폭우로 인한 힘든 생활을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는 힘을 주는 원동력입니다. 4계절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꽃의 땅 꽃지는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의 축제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의 축제였다
 
이름만 예쁜가, 꽃지.
 
국제꽃박람회가 열렸던 장소를 뒤로하고 꽃지해수욕장에서 방포항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보니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할매(할머니)바위와 할배(할아버지)바위입니다.
 
애달픈 전설을 지닌체 우리들을 반기는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애달픈 전설을 지닌 채 우리들을 반기는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전설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9세기 )때 해상왕 장보고는 안면곶 경승포 해상에 진지를 구축하고 승언이란 장수를 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승언 장수와 그 아내 미도는 주변에서 시기를 할 정도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자 장보고의 명을 받은 승언 장수는 아내를 남겨둔 채 해상으로 출정을 하였고, 혼자 남은 미도는 매일같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기다렸지요. 오랫동안 남편이돌아오지 않자미도는 기다리던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었고 그 후 할미바위가 되었어요.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서 승언 장수가 고향에 돌아왔고, 부인의 애달픈 사연을  알게 되자 승언은 망부석이 된 아내를 지켜주려고 바위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훗날 안면읍 승언리의 '승언'은 승언 장수의 치적을 기리기 위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태안군지" 5권, 지명과 마을이야기 참조

할매바위의 앞 모습이 낮설다.
▲할매바위의 앞모습이 낮설다
 
예전부터 두 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꽃지 해변을 걸어봅니다. 할매바위 앞에 서니 내가 알던 우리 할머니와는 많이 달라서 당황스럽지만 침착하게 둘러보았지요.
 
꽃지 해변을 거니는 갈매기
▲꽃지 해변을 거니는 갈매기
 
소금끼 머금은 바윗돌 곳곳이 오래된 세월에 풍화(風化)되어 승언 장수를 기다리는 미도 할머니의 형상을 잃었지만, 할매바위 앞에 서니 왠지 어릴 적 우리들의 할머니같이 포근하고 편안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할머니 집에 가면 우박 같은 설탕이 덕지덕지 붙은 녹색 줄과 분홍색 줄이 선명한 왕사탕을 독립군에게 자금을 전달하듯 눈치를 보시면서 제 손에 쥐어 주시던 할머니.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마주하면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는, 그 위태로운 몸을 나뭇가지를 잘라서 만든 불안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반가움에 가득한 미소를 보이시며 나에게 다가와 '내 새끼, 혼자서만 먹어' 남몰래 한복 속에서 사탕을 쥐어 주시던 할머니 얼굴이 할매바위 앞에서 오버랩되어 한동안 넋을 잃고 오랜 세월 전으로 돌아가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밭 일과 논 일로 허리를 펴지 못해서 아기 보행기를 의지해 걷는 어머니.
▲밭일과 논일로 허리를 펴지 못해서 아기 보행기를 의지해 걷는 어머니
 
꽂지의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붉게 물드는 할매바위와 할배바위를 보노라면 우리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이상을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꽃지 해변의 저녁 노을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시작인 듯합니다.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뒤에서 해가 지고 있다.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뒤에서 해가 지고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도 우리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 부모 세대의 생각은 아이들의 효도를 기대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잘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저 할매바위와 할배바위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가 된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왕에 도움을 받는다면 자식들이 나의 손과 발이 돼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방포항과 꽃지를 이어주는 다리에 해무가 자리 잡는다.
▲방포항과 꽃지를 이어주는 다리에 해무가 자리잡았다
 
어릴 적 읽은 책에서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로 뛰어들 때 그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인당수 같은 꽃지 해변의 푸르른 바닷물을 바라보니 할매바위, 할배바위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