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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2020.03.10(화) 13:59:11엥선생 깡언니(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TV를 통해 끝없이 길게 늘어선 마스크 구매 행렬을 보고는 그 긴 행렬에 합류할 자신도 없었고 할 필요도 못 느꼈다. 그러나 예상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갖고 있던 마스크가 바닥을 보이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3월 2일(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체국이나 농협마트보다 구매가 수월해 보이는 약국에 들렀다. 역시나 마스크 판매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약국을 나오는데, '마스크 미착용 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안내 문구가 보였다. 마스크 구매는 어려운데, 마스크를 안 하면 판매처에 들어갈 수가 없다? 정말 모순된 상황이 아닌가! 씁쓸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3월 3일(화)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하지만, 동네 약국은 이미 공적 마스크 200여 장이 다 팔린 후였다. 다음으로 찾은 농협 하나로마트는 오후 2시부터 판매를 시작한단다. 5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어쩔 도리 없이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면 단위 지역으로 이동해 보았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우체국은 판매 종료 상황. 오전 8시 이전부터 줄 서서 8시 반에 번호표 받고 9시면 판매가 끝난단다. 맘먹고 나선 길이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인근 농협 하나로마트로 차를 돌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차 한 잔을 하며 무심히 시간을 죽이다 오후 1시 다시 농협 하나로마트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안 보인다. 오히려 불안했다. 판매원에게 번호표 배부 시간을 물으니,

"번호표 배부는 끝났는데…."

한다. 답을 들으니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도리 없이 자리를 떠나와야 했다. 돌아서는 뒤꼭지로 마스크를 사러 왔다 허탕친 손님들의 원성이 내리꽂힌다.
 
오늘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싶어 다른 판매처를 찾아갔다. 긴 줄이 보인다. 다행히 대기 중이었고,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80명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긴 줄 끝에 서며 순번을 세고 또 세었다. 아!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줄 선 사람들끼리 마스크 구매의 애로를 토로하다 보니 번호표 배부를 시작한다는 마트 직원의 멘트가 들린다. 예상대로 80명에게 번호표가 나누어졌다. 귀하디 귀한 번호표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만일에 대비해 사진을 찍어 놓고, 행여 잃어버릴세라 힘껏 움켜쥐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줄이 줄어들자 이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설레기 시작한다. 먼저 매장 안으로 들어갔던 앞번호의 구매자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주위 요청으로 3매가 든 마스크를 내밀어 보인다. 마스크 구경 처음 하는 것마냥 다들 신기해한다.

드디어 나도 3매에 2,780원인 공적 마스크를 손에 넣었다. 어렵게 구한 데다 약국보다 저렴하게 마스크를 구매해서 보무도 당당하게 귀갓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귀갓길에 다른 약국보다 배송 시간이 늦은 곳에서 마지막 남았다는 5매들이 마스크를 추가로 구매할 수 있었다.

전리품처럼 손에 쥔 마스크 때문에 모르고 있었는데,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니 온몸이 쑤셔댔다. 그리고 하루를 곰곰이 되돌아보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허탈하기만 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4일(수)은 아침 댓바람부터 서둘렀다. 멀리까지 마스크 원정은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아서였다. 약국 문도 안 열린 이른 시간에 이미 긴 줄은 만들어져 있었다. 이날은 크게 이문이 남는 일도 아니고 본업에 지장을 받아 가며 격무에 시달리던 약국에서 순서대로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약사는 1일 20명까지는 마스크 수령이 확실하지만, 당일 마스크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며 집에서 출발 전에 반드시 전화 문의를 꼭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약국의 현명한 대처로 하염없이 대기하지 않아도 된 날이다. 명단을 작성하고 나오며 살피니 긴 줄은 아니다 싶었는지 마스크 구매 희망자들이 계속해서 모이고 또 모이는 모양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3월 5일(목), 점심시간이 끝난다는 오후 1시 20분에 맞춰 약국으로 향했다. 전날 18번째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기에 신분증을 챙겨 마스크를 사러 나선 것이다. 5매가 든 마스크를 사 들고 나오며 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려주소 하니 정책이 바뀌어 명단에 올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마스크 판매 정책이 어떻게 바뀔까 궁금해 하며 나오는데, 멀리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 해바라기를 하며 줄지어 앉아 있는 분들이 보였다. 마스크 구매를 위해 선 줄이 그리 길지 않으니 희망적이다. 아뿔싸! 그러나 이날부터 이곳도 오전에 번호표를 배부하고 오후에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단다. 매장 앞에 계신 분들은 전부 오전에 번호표를 받으신 분들이었다. 투덜투덜, 판매처마다 시간도 제각각이고, 하루가 멀다고 판매 방식이 바뀌니 이미 손에는 마스크 5매가 들려 있는데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주초만 해도 마스크 행렬에 합류하지 말자 작심했건만, 막상 현장에서 마스크 대란 사태를 직접 겪게 되자 조바심은 더욱 커졌다. 전날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데다 코호트 격리를 받아야 하는 집단 감염까지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기에 점점 커지는 불안감으로 마스크 행렬에 또 발을 디뎠다.
 
3월 6일(금) 오전 11시, 잠시 짬을 내 농협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길게 선 번호표 대기자 수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 나오려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긴 줄 꽁무니에 서 있어 봤다. 이날은 1인 1매씩 판매되어 100명에게 마스크 판매를 할 수 있단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싶었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공주오일장의 잠정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위)과 폐쇄 첫날의 공주오일장 풍경(하)

마침 공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간을 보낼 겸 공주산성시장으로 가보았다. 장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19로 인하여 3월 6일부터 공주산성시장 5일장을 잠정 폐쇄합니다.' 공주산성시장상인회에서 내건 현수막이 눈에 띈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때문인지 일찌감치 다른 오일장들이 폐쇄된 것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공주 오일장도 결국은 잠정 폐쇄에 들어갔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한 상인들과 허락을 받은 지역 상인들 몇몇만이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역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걸 실감한다. 전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지만, 계절이 바뀔 때면 제일 먼저 색다른 먹거리와 볼거리 제공으로 많은 사람이 찾던 곳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느 마스크 유목민의 한 주일 사진
 
오후 2시, 다시 농협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빠른 판매를 위해 지역 화폐나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준비해 달라는 직원의 안내가 있고 나서 번호와 상관없이 줄 선 대기자들에게 마스크 1매씩 판매가 시작되었다. "이거 한 장 받고 가네." 할머님 한 분이 허탈한 듯 마스크 한 장을 내어 보이셨다.

그날 밤, 변경된 마스크 5부제 판매 소식을 접하고 다시는 약국 이외에서 마스크를 구하려고 줄 서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변경된 마스크 판매방식이라기보다는 나보다 더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방송을 보면 쪽잠을 자며 코로나19와 사투 중인 의료진들의 얼굴마다 반창고가 붙어 있다. 방역 고글과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그들의 얼굴을 보면 더는 그 어떤 불평도 늘어놓을 수 없고, 조심하며 개인 수칙을 잘 지키면 날마다 KF94 마스크를 바꿔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공주시(시장 김정섭)는 3월 6일(금), 공주보건소 전문 방역인력들이 관내 주요 시설을  대상으로 방역소독을 했다.(사진 공주시)
▲3월 6일, 공주시 관내 주요 시설에 방역소독 중인 공주보건소 전문 방역인력들(사진 공주시청)
 
지자체마다 방역과 검진에 힘쓰고 있다. 영업이 안 돼 문을 닫은 식당 사장님은 의료진들을 위해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찬 바닥에서 식사하는 소방공무원들에게 카라반(이동식 주택)을 제공한 업체 대표님도 있다. 지인 한 명이 SNS에 마스크 5부제가 시행돼도 자신은 한 달간 마스크 구매를 하지 않겠노라 글을 올리자 자신도 그러마 댓글을 단 이가 많다. 어려운 시국에도 나만 살겠다고 생활용품을 사재기하느라 다투지 않는 나라, 나가지 않게 되니 쓸데없는 지출이 줄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국민들이 자랑스러운 매일이다. 
 
개학일이 연장된 학생들은 충남 e학습터(http://cls.edunet.net)를 이용해 수업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자원봉사를 위해 지난 2월에 받았어야 하는 연수를 대신해 15일간 원격지원으로 교육을 받는 중이다. 국내의 어수선한 상황을 듣고 걱정스러워 전화를 걸어온 타국의 지인에게 이러한 우리나라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전하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치켜세운다. 통화를 끝내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다짐을 받고는 작별을 고했다. 작금의 사태를 우리 국민은 꼭 극복할 것이라 굳게 믿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약속이 가능했다. 
 
3월 9일(월), 마스크 5부제가 본격 시행되었다.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고 마스크를 제때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불평으로 해결되지 않을 사안임을 알기에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면 민원을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마스크 구매에 어두운 분들과 정보를 나누고, 여분의 마스크를 가진 분들과 마스크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드리려 한다. 그러고도 여력이 생기면 적은 금액이나마 기부활동에도 동참할 생각이다. 마스크 구매는 타인의 안전을 위해 나서는 일이라 애써 방패 삼으며 일주일간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얻은 소시민의 뒤늦은 반성의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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