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시골 장터를 중심으로 한 상거래의 주역은 '부보상'이었다

유형, 무형의 문화자원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창조해야

2020.02.13(목) 07:29:46홍주신문(uytn24@hanmail.net)

시골 장터를 중심으로 한 상거래의 주역은 '부보상'이었다 사진


예로부터 우리네 삶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장꾼과 함께했다. 장꾼의 역사는 실로 오래다. 흔히 장꾼을 장돌림, 장돌뱅이, 선질꾼, 보따리장사꾼 등으로 불리는데, 장꾼은 일찍이 고조선시대부터 존속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상거래의 주역은 바로 '부보상(負褓商)'에서 기인한다.


부보상(負褓商)은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이 합쳐진 말로 조선시대 장터를 중심으로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매개하던 전문상인을 일컫는다. 부상은 물건을 지게에 지고 팔러 다니던 남자행상(등짐장수)이고, 보상은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다니던 여자행상(봇짐장수)을 말한다. 부상은 돌짐장수, 등짐장수라고도 일컫는데 주로 지게를 이용하여 물품을 팔았다. 취급품목은 생활용품으로 생선, 소금, 토기, 목기(木器), 수철기(水鐵器)등 식생활 관련 소비품이나 도구 등을 취급했다. 부상은 처자를 데리고 다녀 떠도는 삶을 살았고, 보상의 경우는 일정한 주거지가 있어 가족과 떨어져 있다가도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물품을 보자기에 싸서 멜빵으로 운반하며 장사를 하였는데, 주로 댕기, 비녀, 얼레빗, 족집게, 연지함, 분통, 염낭, 풍차 등 작고 귀한 물건들을 주로 팔았다고 한다. 그들은 규율과 예절이 엄했고, 서로 돕는 정신이 아주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보상의 시조(始祖)는 백달원인 것으로 전한다. 이성계가 선대의 명복을 빌고 스승인 무학대사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안변에 석왕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이 절(寺)을 지으면서 삼척에 있는 500나한의 불체 운반을 행상인 백달원과 그의 동료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이들이 워낙 열심히 불체를 보듬어 운반하니 이성계가 이를 가상히 여겨 개성의 발가산에 부보상의 본거지가 된 임방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어물과 소금, 목물, 토기, 수철 등 다섯 가지 물품에 대해 독점권을 부여한 것으로 전한다. 이때부터 전매특권을 부여함으로 상업경영의 안전성을 확보했고, 전국의 부보상들이 지도자로 부각됐다. 특히 이성계가 등극한 후, 백달원에게 하사한 옥도장 '부보상지인장(負褓商之印章)'을 내림으로 그의 지위는 확고하게 지도자로서 부보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부보상' 정신 재정립, 미래 가치로 재평가해야
부보상은 동쪽지역에서 아침밥을 먹고, 서쪽지역에서 저녁잠을 자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저자와 장터를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면서도 국가의 비상시에는 군량미를 운반하였을 뿐더러 상병단을 조직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발휘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대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곤경을 치를 때는 부보상인 마기량이 충성심으로 도왔고, 홍경래의 반란 때에는 의주의 허황이 부상 1000여명을 지휘해 관군과 더불어 반란을 진압하는 등 명리를 초월해 국가를 위해서라면 전령이나 치안의 일까지 도왔다.


부보상을 '장돌림'이라고 부르는데 시장과 시장을 돌아가게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했다는데서 유래했다. 흔히 '장돌뱅이'라고도 불렀는데, 장돌림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물품유통의 본분을 저버리지 않았다. 시장의 틀을 탈선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본래기능인 판매와 구매에 활력을 불어넣어 시장을 자전과 공전을 시킴으로써 독창적인 상업유통제도를 오늘날까지 확대 발전시켜왔다는 점은 평가받을 일이다.


부보상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은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다만 몇몇 부보상의 유품들만 남아 그 시절의 화려했던 명성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홍성을 비롯한 충남지역에는 상무사를 통해 역사적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유형, 무형의 문화자원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지금 우리는 고물가, 고유가시대, 침체된 경기 등 어려운 경제현실 속에 살고 있다. 예부터 지역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맡았던 부보상 정신의 의미를 반추할 필요가 있는 오늘이다. 봉건사회와 근.현대사의 경제주체였던 부보상들의 삶과 그 범상치 않은 궤적이 만들어낸 역사를 재정립하고 미래 가치로서 재창조해야 한다는 의견에 설득력이 더하는 이유다. 홍성장과 광천장, 갈산장 등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인간미 넘치는 시골장터의 모습을 되찾아 활기 넘치는 시골장터를 되살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직까지 홍성지역의 시골장터에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출처 : 홍주일보(http://www.hjn24.com)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