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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등불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2019.05.22(수) 17:59:39이석구(hsklske23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민족의 등불 윤봉길 의사(尹奉吉義士)를 추모하며 
                           
충의사(忠義祠)는 국가 민족을 위하여 몸 바치신 우리 민족의 등불인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사당이 있는 곳이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출생하셨다. 11세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 식민지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자퇴하였다. 13세에 한문학을 시작하고 19세에 신학문을 습득 야학을 개설하여 농촌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농민독본을 저술하고 월진회를 조직하였다. 
  
1930년 일본 경찰의 탄압에 출가하여 김구 선생이 이끄는 중국 상해 독립 운동 조직인 상해 한국애국단에 입단하였다. 1932년4월 29일 일본 국왕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기념 축하식 기념식장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죽였다. 여러 명의 일본 수괴를 죽이고 부상을 입혔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보여 주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해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장렬히 순국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유적은 1972.10.14일 사적 229호로 지정되었다. 윤 의사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 충의사와 유물 전시관과 생가인 광헌당, 성장가인 저한당이 있다. 
 
요즘 급진적인 물질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조국에 대한 애국 열정이 소홀해지는 것 같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는 국가의 안보 능력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우선 유비무환 정신으로 국가의 튼튼한 힘을 길러야 안심하고 평화롭게 국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구국의 일념으로 용감히 앞장서서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회생하였다.
세계 만방에 우리 민족의 투철한 애국정신을 알리는 동기가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새롭게 다짐하기 위하여 충의사를 계속 참배 추모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윤봉길의사 기념관

민족의 등불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사진


▲윤봉길 의사 영정

기념관 입구
▲기념관 입구

민족의 등불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사진

▲충의사
 
충의문
▲충의문

사적비
▲윤봉길 의사 사적비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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