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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2019.05.07(화) 08:00:47지민이의 식객(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뛰어난 사람을 찾는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사람은 남들이 갖지 못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고 이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한 가지만을 파는 사람을 고슴도치에 비유하고, 여러 분야에 지식을 아는 사람을 여우에 비유한다.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에 의하면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이이고 지금은 큰 것 여러 개를 아는 여우가 주목을 받는 시대이다. 그럼 두 동물을 합쳐 여우도치가 되는 것이 미래형 지식인이지 않을까.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죽림서원은 호서지방에서 유일하게 당색을 구분하지 않고 당파를 초월해 충청 선비의 소통과 융합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죽림서원은 1653년(효종 4년) 송시열과 윤선거(尹宣擧)가 만나 주희(朱熹)의 사상을 비판하고 개혁적 사상을 가진 윤휴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논산의 명재 윤증과 송시열을 완전히 갈라서게 만드는 불씨가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임리정은 오래간만에 올라와 본다. 앞에 건물들이 없었을 때는 이곳은 상당히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강경포구가 그대로 있었을 때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정자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성실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분명하게 변별하고, 돈독하게 행하여야 하듯이 호기심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으로 활용을 해야 한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김장생이 말년에 낙향(1626년·인조 4년)해 강경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가 죽림서원(황산 서원)이며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임리정(황산정)이 바로 그것인데 송시열은 사계 선생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 죽림서원을 중심으로 임리정 반대편에 팔괘정을 짓기도 했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살다 보면 적법하더라도 부당한 경우가 있고 부당하더라도 적법한 경우가 있다. 그 기준을 잘 세우는 것은 잘 배우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그 철학적인 관점의 확고함도 필요하지만 유연함도 필요하다. 김장생이라는 스승에게서 송시열이라는 제자로 이어졌고 송시열이라는 스승에게서 윤증이라는 제자로 이어졌지만 전자의 관계는 상생이었으나 후자의 경우는 대립의 관계로 변했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열린 논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열린 논쟁을 위해서는 참가자가 동일한 자연 언어를 구사하고 참가자는 참이라고 믿는 사실만을 서술하고 옹호하며 모든 당사자가 대등한 처지에서 토론에 참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숙의 민주주의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팔괘정은 강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김장생은 제자인 송시열과 열린 논쟁을 했던 사람이지만 송시열과 윤증의 사례로 보면 열린 논쟁을 했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지적인 폭넓음은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여러 영역, 다양한 지식의 범위에 걸쳐 있는데 이는 폭넓은 지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시사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이어지는 강경의 선비문화 사진

김장생만큼 자신의 제자를 많이 배출한 사람이 있었을까.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이유태(李惟泰)·강석기(姜碩期)·장유(張維)·정홍명(鄭弘溟)·최명룡(崔命龍)·김경여(金慶餘)·이후원(李厚源)·조익(趙翼)·이시직(李時稷)·윤순거(尹舜擧)·이목·윤원거(尹元擧)·최명길(崔鳴吉)·이상형(李尙馨)·송시영(宋時榮)·송국택(宋國澤)·이덕수(李德洙)·이경직(李景稷)·임의백(任義伯) 등이 그들며 아들 김집 역시 그의 문하에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신성하게 될 그릇을 알아보는 것에 진정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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