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의 원색들이 가득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알알이 곡식들이 익어가면서 황금색의 풍요로움을 보이며 샛노랗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갈 때 내는 색은 은행나무와 비슷하지만 같은 시기에 그 색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벼가 어느 정도 수확되고 나서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데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보령의 신경섭 고택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자주 먹는 쌀이기도 하지만 벼를 자세히 바라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가면서 벼가 익어가는구나 정도로 지나쳐갔다면 요즘에는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더 마음에 와서 닿게 됩니다. 농부들은 88번의 노력을 통해 이걸 재배한다고 하는데 보통은 이 황금빛을 보지 못하고 마트 등에서 하얀색으로 도정된 쌀만을 보게 되죠.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은행나무는 황금색 같은 노란색으로 물들어서 군락지에 가면 장관을 이루는데 제가 간 날은 때마침 신경섭 고택의 주인분이 와계셔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60대 정도로 보이시는 여성분과 딸이 같이 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은행이야기 익어가는 알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령에 거주하시지는 않고 서울에 거주한다고 하는데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꼭 내려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신다고 합니다. 



신경섭 고택은 은행나무가 익어갈 때만 와본 적이 있어서 밤이 이렇게 많이 떨어진지도 몰랐습니다. 게다가 마당에는 단감나무도 심어져 있어서 단감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무더위가 심해서 밤이 늦게 익어갔는데요. 그래서 10월 중순이나 되어야 대부분의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질 듯합니다. 이곳의 밤은 무더위 때문인지 몰라도 알이 조금 작은 편이었습니다. 무더위는 은행나무의 열매인 은행조차 알을 작게 만들었습니다.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터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가 있고 열매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긴코릭산(Ginkgolic acid)이 들어가 있어 냄새가 조금 그렇긴 하지만 조금 맡다 보면 맡을만합니다. 그냥 구수한 고향의 냄새 같은 느낌이랄까요. 



신경섭 고택은 가만히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과 휴일이 되면 이곳을 찾아옵니다. 물론 이곳보다는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을 주로 둘러봅니다. 백악기(6천5백만~1억 3천5백만 년 전)에는 지금의 모양과 거의 같은 은행나무가 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자리하였고 한국은 중국에서 건너오게 되는데요. 신경섭 고택은 조선 후기(朝鮮後期) 한식 가옥(韓式家屋)으로 당시 부호(富戶)의 사랑채로 건축되었습니다. 마당에 떨어진 단감을 하나 들어보기도 합니다. 신경섭 고택의 주인분은 누가 와서 이곳에서 은행을 주어가던 밤을 주어가던 단감을 주어가든 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계셨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로,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노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물드는 청라 은행마을에서 열리는 축제는 올해 은행나무의 색이 변해가는 시기로 볼 때 10월 말에서 11월 초나 되어야 될 듯합니다.
 


청라 은행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독보적으로 혼자서 단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벼가 만들어내는 황금색의 풍광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나무가 상당히 큰데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정자가 있어서 운치가 있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