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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당진 신리성지의 순교미술관 관람기… 종교 전파의 생생한 기록들 감동

2018.08.25(토) 17:41:00양창숙(qkdvudrnj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순교미술관이 있는 당진 신리성지 전경

▲ 순교미술관이 있는 당진 신리성지 전경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작년 3월에 당진의 신리성지에 '순교미술관'이 세워졌다.
순교미술관은 신리성지 다블뤼 주교 기념관 안에 1392㎡ 규모로 건립됐다. 국내에 순교미술관은 이 시설이 처음이라고 해서 천주교 관계자들은 물론 국내외 종교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이곳 순교미술관을 설명하려면 먼저 신리성지에 대해 알고 가야 한다.
 
당진시 합덕읍에 속한 신리는 삽교천 상류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금은 평야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밀물 때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신리의 인접마을인 거더리에는 나루가 있어 배로 외부와 왕래하기가 수월했다. 신리와 거더리는 합쳐서 신리로 불렸다.
1860년대의 기록에 의하면 신리 일대는 온통 습지였으며, 우물이 없어 주변에 흐르는 소금기 섞인 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순교자의 이름을 기록한 벽면

▲ 순교자의 이름을 기록한 벽면


순교 벽화

▲ 순교 조각 부조 벽화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세례를 받은 1784년 이후 신리에 천주교가 전해지게 된다. 이 시기 신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1866년 무렵에는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로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성장한다.
신리는 바닷길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내포의 교우촌들과 쉽게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었기에 조선 천주교회의 중요한 거점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1865년부터 신리에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주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입국하는 통로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신리의 첫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손경서(안드레아)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자선(토마스) 성인이 공주에서 순교한 이후 서울, 수원, 홍주, 해미, 보령 갈매못 등에서 40명이 순교의 길을 떠났다.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지역 순교자들 중 1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신리의 신자 가운데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도 많았는데, 인근 대전리 공동묘지에 위치한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

▲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습

▲ 다블뤼 주교 동상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병인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신리에는 오랫동안 신자들이 터를 잡지 못했다. 오랜 박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유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내포 교회의 중심이었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땅인 신리는 신자들 사이에서 신앙을 회복해야만 하는 소중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시복되자 신리에는 순교복자기념비가 건립되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으면서 천주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리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되었다.
이곳은 2008년에 전대사 지정성지로 지정되어 곳곳에서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고 오늘에 이르렀다.
 

순교미술관

▲ 순교미술관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순교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문

▲ 순교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문


안내문을 보는 어린이 관람객

▲ 안내문을 보는 관람객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그리고 결국 작년에 이같은 순교의 역사를 종교적으로 오랫동안 기록하고 알리며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순교미술관이 탄생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순교의 역사를 벽화로 그려 놓은 전시공간

▲ 순교의 역사를 벽화로 그려 놓은 전시공간


그렇게 만들어진 순교미술관에는 현재 이종상 화백이 순수한 믿음에서 재능 기부를 통해 3년에의 작업을 거쳐 교회에 봉헌한 신리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13점의 순교 기록화를 전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서품식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의 주례 하에 조선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때 다블뤼 신부는 페레올 주교를 도와 사제 서품식 보좌를 하고, 11명의 조선인 신자, 4명의 유럽인 신부, 1명의 중국인 신부가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황산포구를 통해 입국한 선교사들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김대건 신부가 탄 배 라파엘호는 상해에서 출발해 제주 용수리에 표착한 뒤, 황산포구를 통해 조선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낯선 땅에서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상복으로 갈아 입고 조선의 교우들과 만나게 된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신리에서의 미사
다블뤼 주교는 사목방문의 대부분의 시간을 400여명의 신자가 있는 신리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서 보냈다. 다블뤼 주교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많은 신앙 교육을 했고, 자주 미사를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거더리에서 잡힌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는 홍주를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은 맨 땅으로 되어 있었고, 살인자들과 도둑들이 뒤엉켜 함께 갇혀 있었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이들이 수감되었던 때는 사순시기였기에, 자신들의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에게 음식을 양보하며 희생과 극기에 동참하였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군무효수형의 집행을 위해 갈매못으로 온 다섯 성인은 충청도 수군절도사에 의해 형이 집행되었다. 만일을 대비해 관장 주위로 9명의 조총수가 배치되었고, 200여명의 병사들이 구경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1868년 이후 수많은 신리 신자들이 포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포졸들은 신자들이 반항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몽둥이로 마구 때려 힘을 빼고, 팔을 부러트렸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박해시절 신앙을 지키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피난길을 떠났던 손 요한은 그 때에 순교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을 염습하기 시작한다.
전염병에 걸리고, 부패가 된 시신을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묵묵히 염습을 하며 묻어주었다. 이런 손 요한의 모습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한눈에 사진


1864년 다블뤼주교가 번역한 천주교 공식교과서

▲ 1864년 다블뤼주교가 번역한 천주교 공식교과서


이밖에 많은 자료와 당시의 성경, 기록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기록화를 통해 신리성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순교미술관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둘러보았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될 것 같다.
 
당진시는 지난 2014년 성공적인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4주년을 기념해 금년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신리성지에서 제4회 8.15 프란치스코 데이를 개최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8.15 프란치스코 데이 행사는 솔뫼성지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그간의 행사에서 벗어나 내포 천주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그리고 버그내 순례길을 모두 아우르는 풍성한 행사로 개최됐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집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4주년 축제 전야 미사가 열리고, 갈라쇼 음악회도 예정 열어 기념행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대한민국 천주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내포의 신리성지. 그리고 그 역사적 유산을 잘 보존하며 순교의 의미와 성지의 의미를 함께 간직하고 있는 신리성지의 순교미술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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