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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2018.06.13(수) 19:27:40지민이의 식객(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서훈을 두고 시끌벅적하다. 독립운동가 중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서훈이 3등급으로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방문해서 헌화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병천순대로 유명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천안 제3경에 지정이 되어 있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는 윤봉길 의사가 있는 곳만큼이나 규모도 크고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나들이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무거운 느낌의 사적지라기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소라고 편안하게 다가가도 좋은 곳이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나왔기에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서훈을 받은 해는 1962년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와 남녀에 대한 생각에 대한 극심한 차이가 심할 때였기에 문제의 소지는 다분해 보인다. 남녀를 불구하고 독립투사는 그냥 성별을 가리지 않아야 하지만 보통 독립투사는 남자로 규정되고 여자의 경우 독립투사 언니 혹은 누나라고 별칭이 더 붙는다. 유관순 언니라는 말이 더 익숙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유관순 열사 사적지는 오래간만에 다시 찾아와 본다. 전에는 사적지를 온 것이 겨울이어서 사적지 내의 공원을 산책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여름의 초입에 오니 산책할만한 공간이며 가족과 함께와도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옆에는 연꽃들이 곧 피어날 것 같은 연꽃 연못이 있고 잔디밭이 있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할 수 있는 곳이다. 역시 물이 있어야 사람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초록색은 사람들에게 진정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마음에 평안을 느낄 수 있는 색감이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조용하게 이 공원을 거닐며 서훈이라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당시 기준으로 지정되었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법을 바꿀 수 있어야 할까. 법에서는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유관순 열사가 고작 3등급이라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천안과 충남을 대표할 수 있는 국민적인 인물로 만드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대통령 훈장이 부여된 사람이 바람직하지 않았던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취소가 되지는 않은 경우가 많았다. 무언가에 대한 타이틀과 격을 따지는 것에 더 연연하는 것이 과거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유관순 열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만 살아왔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교과서에조차 많이 다루지 않는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2019년이 되면 삼일 만세운동을 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아 다시는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게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명확할 필요성이 있다. 전혀 다른 국가가 들어서지 않는 이상 한 번 만든 법을 지킬 이유가 있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유관순 사적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유관순 생가가 있다. 이곳도 오래간만에 다시 찾았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하물며 서훈 등급을 어떻게 알겠는가. 정부 서훈은 상훈법에 의거 대한민국이나 우방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훈장과 포장을 수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아무도 그 시기에 일제에 맞서지 않으려고 했을 때 학교의 출입이 막히고 나서도 이곳에 내려와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유관순 열사도 과거의 인물로 잊히게 될 것이다. 서훈을 격상시켜주면 더 관심을 가지게 될까. 결국 사람이 사는 국가와 인물에 대한 관심이 먼저가 아닐까. 

만세운동 하나로 인해 온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다 싶을 정도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걸로 인해 일제는 이 땅의 통치방식을 바꾸게 된다. 유관순 열사가 살아왔던 그 시절의 현실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일제로 인해 국가의 틀이 모두 틀어졌다. 우리만의 힘으로 국가를 재건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 시기에 조그마한 소녀의 움직임으로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사진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우린 한 번이라도 더 움직여서 선현의 발자취를 따라갈 필요성이 있다. 선현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노력을 하고 나서야 서훈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관리하면서 이곳에 살던 후손들의 집은 비어 있는 상태이다. 고택이 잘 지어지고 관리도 비교적 잘되어 있어서 한옥스테이 공간으로도 활용이 충분해 보인다. 사람들은 머물러야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된다. 단순히 유관순 열사의 위치나 명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천안의 대표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오랫동안 어떻게 인식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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