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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는 이유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올려야

2018.05.30(수) 10:43:00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 충남 천안은 ‘천안 12경(天安 12景)’을 자랑한다. 천안시는 지난 2009년 1월 22일 지역의 대표성과 자연 경관, 문화적·역사적 가치, 발전 가능성, 접근성,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그리곤 천안시의 대표적 관광 자원이자 명소인 12개소를 ‘천안 12경’으로 선정했다. 제1경인 ‘천안 삼거리’를 시작으로 제2경 ‘독립 기념관’, 제3경 ‘유관순 열사 사적지’가 그 뒤를 잇는다. 
 
제4경은 ‘아라리오 광장’이며 제5경은 ‘병천 순대 거리’다. 제6경은 ‘태조산 각원사’이며 제7경은 ‘광덕산 설경’, 제8경으론 ‘천안 종합 휴양 관광지’가 당당하다. 제9경은 ‘왕지봉 배꽃’이고 제10경은 ‘입장 거봉 포도 마을’이 꼽혔다. 제11경은 매년 가을 명불허전의 전국축제로 자리매김한 ‘흥타령 춤 축제’이며 마지막으론 제12경 ‘천호지 야경’ 또한 압권의 절경을 자랑한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독립운동가는 부지수로 많다. 그분들의 애국애족 정신에서 기인한 희생과 투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달콤한 과실을 향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립투사로 쉬 거론되는 인물로는 김구와 안중근, 유관순 등이 거명된다. 이중 유관순은 단연 천안이 자랑하는 독립운동가이다. 유관순(柳寬順)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는 이유 사진
▶ 교통의 중심 천안역

천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914년 공주영명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였고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휴교에 들어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시위에 다시 참가했다. 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竝川) 장터에서는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들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었다.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유관옥(柳寬玉)을 만났다.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는 이유 사진
▶ 천안명물 호두과자

그 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하여 순국하였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 한 것이었다. 유관순에 대한 서훈(敍勳)은 너무나 늦게 이뤄져 1962년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충청남도는 그녀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유관순상’을 제정했다. 최근 들어 3·1운동의 상징이랄 수 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훈이 하지만 고작 ‘3등급 훈장’이라는 부분에 많은 국민들이 이의 부당함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충청남도와 천안시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돌입했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위에서 열거하였듯 유관순 열사의 집안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제로부터 그야말로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그러했거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천안 12경의 ‘제3경’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사적지처럼 그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한 까닭은 논외로 치더라도 천안은 능수버들과 호두과자 외에도 유관순 열사를 모티브와 마스코트화(化)한 ‘횃불낭자’가 압권이다.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는 이유 사진
▶ 3.1운동 재연행사 모습

1963년에 제정된 상훈법에서는 서훈의 기준을 ‘공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와 지위, 그 밖의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돼 있다고 한다. 따라서 55년 전에 정해진 유관순 열사의 등급을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건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유관순 열사는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분법, 그리고 편견의 프레임에서도 자유로워야 마땅한, 우리 모두의 영원한 ‘독립투사 누나’와 ‘언니’인 때문이다. 국가보훈처와 행정안전부는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한다’며 유관순 열사의 서훈을 격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는 이유 사진
▶ 3.1운동 재연행사를 취재하는 필자

그렇지만 서훈이 현저히 낮게 매겨진 인물들을 재평가하여 훈격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이제 국민적 공감대이자 상식이 되어야 마땅하다. 유관순 열사가 ‘고작’ 독립운동가 서훈 3등급이 된 데에는 천안에서만 활동한 지역 운동가로 여겨진 탓이 크다는 분석의 주장 역시 지나친 편견임은 물론이다. 충청남도와 천안시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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