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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를 사랑한 시인, 열정 남기고 떠나

문화 예술 거목.. 홍병선 전 예총 지회장 영면에 들다

2017.09.06(수) 14:57:22관리자(ionyang@hanmail.net)

향토를 사랑한 시인, 열정 남기고 떠나 사진


척박한 지역의 향토 문화예술계를 일으켜 세우고 이를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는데 온 힘을 다 바쳐온 지역 문화예술계의 거목이 쓰러졌다.

 

홍병선 전 아산예총 지회장이 지난 9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4일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인과 가족들의 추모 속에 대술 화산추모공원에 잠이 들었다. 향년 81.

 

문화예술에 관한한 불모지나 마찬가지이던 1987년 아산에서는 김동직 시조시인 등 몇몇 뜻있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지역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던 문화예술인들을 규합해 한국예총 온양시지부(현 아산예총의 전신)를 창립했다.

 

그러나 워낙 척박한 환경 탓에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군분투를 면치 못하던 시기, 당시 문인협회 부회장을 지내던 홍병선 시인은 제3대 아산예총 지회장 직을 떠맡고 의욕적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부흥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역에서 새온양로타리클럽 회장, 민족통일 충남도 부회장, 민주평통 온양시협의회장 등 굵직굵직한 직함을 맡아 활동하던 그는 왕성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고불맹사성 시조비, 신정호 이충무공 시조비 등을 비롯해 아산예총15년사’, ‘아산찬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청백리의 표상 맹사성등 지역의 위인들을 널리 알리고 기리는 시비와 문집 등을 발간해 역사에 남겼다.

 

일찌기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오는 등 문재(文才)를 지녔던 그는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겸손을 보이며 드러내 보이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김동직 당시 문협 아산시지부장은 안타깝게 여겨 끌어내다시피 그를 지역의 문단으로 이끌었다.

당시의 홍병선 시인에 대해 고 김동직 전 아산예총 지부장은 이렇게 적었다.

 

그의 시는 한마디로 뭉클한 서정의 잔잔한 물결이었다. 평생을 시와 더불어 살면서도 시단 전면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그의 겸손은 요즘 아무데서나, 아무에게나 거침없이 과대 포장하는 그릇된 문학풍토 앞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이미 시를 사랑하고 아끼는 애송이 시인이 아니다. 일찍이 서라벌예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시를 스스로의 심상을 다듬어 온 숨은 시인이요, 문학인이다.

 

청년기에 6.25 사변을 맞이했고, 또 가정적 역경을 이기느라 한동안 방황하던 공백기간을 빼놓고는 한시도 시를 위한 펜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그다

 

그는 이미 시집 몇 권을 내놓을 만한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내놓기를 사양하다가 필자의 성화에 못이겨 할 수 없이 보따리의 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작품 하나 하나가 순수 서정의 잔잔한 가락이요, 선율이었다.

 

그는 특별한 기교도 부리지 않고 그렇다고 관념적 세계에 치중하지도 않으면서 잔잔한 직유법에 짜릿한 은유를 거미해가며 순수서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시인 다운 심상 만을 낚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단 전면에 용기를 가지고 뛰어나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해서 지난 1993년 처음으로 지역의 문인단체이던 설화문학회(문인협회 아산시지부)에 가입했다.

 

이후 감춰뒀던 문재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지역은 물론이고 경향각지 문단을 노크하기 시작, 그의 그런 노력은 1995년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월간 한국시한맥문학에 시로 등단하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다시 시와 산문에 시조로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어 1996년에는 지역의 문화예술을 총괄하는 아산예총의 제3대 지회장에 오르며 당시 척박하고 위태위태하던 아산의 문화예술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놨던 것이다.

 

앞서 밝혔지만 초야에 은둔해 있던 홍병선 시인은 1993년 설화문학에 입회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를 설화문학에 이끈 당시 설화문학의 편집진은 그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 해 나온 설화문학 제10호의 특집 타이틀 자체가 홍병선 시인에 건다였다.

 

홍병선 시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숨은 시인이다. 오늘을 이루기까지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전문 시인으로 행세할 겨를이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런 중에도 안으로부터 끓어 오르는 시심을 채울 수는 없었다. 지금 노트에 써놓은 지문만 으로도 시집을 내고도 남을 분량이다. 그런데도 홍 시인은 표면에 나서기를 꺼린다. 겸손이겠지만, 홍시인의 시를 보면 꼭 겸손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사업적으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었지만 문학적으로는 아직도 젊은 날의 순수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수줍음이랄까 그런 이유 등으로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요컨대, 홍시인의 출현은 용기 있는 온양아산 문단에 활력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기대감으로 지켜보자.

 

당시 그가 수줍어 하면서 내놓은 시가 있다.

 

미완성의

 

미완성의 시만

들척이는 책상 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흔적이 아닙니다

 

괴롭고 아쉬운 인생이

꿈을 찾고 있습니다

 

세월을 쪼개어

고민하는 이 시간도

 

언제까지나 - 마냥

방황할 수 만은 없는데

 

미완성의 만 쌓아놓고

바쁘게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내놓은 뒤 본격적으로 경향 문단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시어들을 대방출하기 시작했다.

 

활동한 주요 문인단체만 해도 한국시조시인협회, 충남문인협회, 대전시조시인협회, 시와산문 문우회, 한국불교시인 충남지회, 한맥문학 문우회, 서안시, 한국시 문우회, 설화문학회, 농민문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와 같은 활동의 결과는 같이 있어도 짧은 세월’, ‘채워지지 않는 자리’, ‘구름 속에 묻고온 연가’, ‘무너지지 않는 하늘’, ‘꿈에 그린 자화상’, ‘멀리서 가까이서’, ‘아픔으로 남은 사연등 다수의 시집으로 남았다.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보답으로 한국시 대상, 서포문학 본상, 충남문학 동인지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시조문학 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왕성한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산시민 대상, 내무부장관 표창,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외 다수의 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간 한국예총 아산지부장을 비롯해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 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농민문학 부회장-이사, 충남문학 시조분과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역임했거나 말년까지 활동해왔다.

 

고 홍병선 시인은 말년에 시의 소재로 노인등을 많이 남겼다.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그였기에 무상하게 흘러간 세월에 많은 회한을 가졌음직 하다. 고인이 남긴 이 시를 보면 그 쓸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애잔해진다.

 

노인의 얼굴에서

 

꿈과 염원을 잊어버리고

체념에 젖는 저 표정들

아무도 모르는 아픔들의 사연이

얼룩져 있는 저 흔적들이

굳어져 쌓여가는 저 얼굴에는

모든 것을 달관한 것처럼 웃어도

무력해진 눈빛 속에는

버리지 못하는 저 표정들

묵은 간장처럼 진하고 찌든 소망을

숨기고 사시는 얼굴들이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나

외로움과 아쉬움으로 지쳐 있는

쇠잔한 저 얼굴에는

부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 2017년 설화문학 제50집 상재

 

한편 고인은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시심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를 구상하며 오는 가을에 나올 아산문학’(‘설화문학에서 제호를 변경) 51집에 상재할 시를 내놓았으니 다음과 같다. 이 시는 결국 고인의 유고시(遺稿詩)가 됐다.

 

곡교천을 바라보며

 

쉴새 없이 물 구비를 일으키며

언제나 유유히 흐르고 있는 곡교천

수많은 인재와 역사를 만들며

추억을 간직하고 세월을 쌓여 가면서

발전하고 있는 아산의 요람이여

곳곳을 길러오는 아산의 젓줄이여

한번도 단 한번도 멈춘날 없는

너는 아산의 저력이었지……

아아! 찬란한 태양이 철철 흘러 넘치는

저 물결들의 용트림

아산의 꿈이 만들어 지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지

항상 깨여 있는 도도한 저 흐름

어떤 여울물에 걸려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흘려보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만 밀고나가는

위대한 저 힘 끊질긴 물 굽이를 보라

영원한 아산의 힘찬 숨결을 보라

 

꿈을 버리지 못하고

 

밤은 자꾸만 깊어 가는데

잠은 오지를 않고

슬데 없는 화두 하나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네

온 몸을 뒤척이면서

잠들려고 애를 슬수록

젊어서 꾸었던 꿈들이 몰려들어

한평생 무엇을 했느냐고

괴롭히고 괴롭히네

밤은 자꾸 깊어 가는데

아무것도 할수 없는 늙은이에게

아직도 부푼 꿈이 살아 있으니

그 꿈으로 살라고 하네

 

2017-6-28

 

노년의 삶

 

할 일이 없어지니 만날 사람도 없어지고

거래가 없어지니 주고 받을것도 없어졌다

함께하던 친구들은 모두 소식도 없고

그래서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어진 노년

가깝게 지나던 친지도 만나면 반가운 척은 하나

돌아서면 관심도 두지않고 변해버린 인심들

깊은 산에 절간 같은 고층아파트에 같혀

자식들이 대주는 생활비로 버티어 나가며

텔레비전 앞에서 세월을 보내는 게 일과이고

가끔 단골 삼아 찾아가는 병원 말고는

친절하게 맞아주고 반기는 곳이 별로 없다

매일 한결 같고 변함없는 노년의 그 삶은

먹기 위해서 있는 건지 살기 위해서 먹는 건지

왜 먹고 살고 하는지도 모르며 살고

때가 되기만 기다리다가 헛된 세월만 보내고

자식들을 만나는 날은 기뻐서 감격도 하였지

모든 것은 나를 떠나가고 있는데

항상 떠나려고만 하고 있는데

무엇인가를 놓지 못하고 쫏아가며

기다리며 사는 노년의 마음이여

기다려 보는 노년의 삶이여

 

2017-6-15

 

병실에서

 

자랑할일도 아니어서

말하지 아니 했더니

 

관심이 없는 세상은

무정하기만 하였고

 

외로운 투병생활이

서럽기만 하더라

 

송암사 미륵불

 

세월도 잊으셨는가

푸른 숲에 취하셨는가

풍상이 파고 들어도

모르시고 명상에 드시어

무상에

파묻혀 사시는

고려의미륵부처님이시여

 

형상을 남기지 말라는

부처님의 뜻 모르랴만

시공의 저 무상세계를

맨 몸으로 부대끼며

먼 하늘

그 어느 곳을

방랑하고 계시는지

 

어머니 제삿날

 

은연중 어디서 나타나셨다가

살며시

어둠속으로 사라지시는 어머님

혼란한 마음을 흔들어 놓고

바람처럼 빠져나가신

그 뒷모습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저 어둠 속을

한없이 한없이 방황하던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그리운 어머님

다시 뵈옵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보여주십시오

어디에 게십니까

어디든지 찾아 갈 것입니다

그립고 그립습니다

한없이 원망스럽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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