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군은 2008년부터 ‘찾아가는 초롱불 성인문해교육’(한글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글교육을 통해 한글을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자신감 회복과 소외감을 해소하고, 특히 배움으로 인해 좀 더 활기 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한글교육이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글교육은 많은 비문해자들을 기쁘게 했고, 새로운 세상 밝은 빛을 선사했다.
이름 석 자는 물론 버스도 혼자 타기 꺼려했던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만들었고, 백일장·시화전·편지쓰기 등 다양한 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올리게도 했다.
이에 청양군은 더 한껏 힘을 내 ‘한글 모르는 사람 없는 청양’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 아래, 2016년부터 ‘문맹률 제로화 해’에 도전, 올해도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에서도 우수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청양의 문해교육. 청양을 포함 전국의 몇몇 우수 학습장을 둘러본다. 문해교육을 통해 새 삶을 얻고, 밝은 눈으로 건강하게 100세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군내 학습자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문해교육사들도 소개해 본다. 이번 호에는 청양읍복지회관 이은우 문해교육사와 김건식·이옥우·차복례 씨의 이야기다. <편집자 말>
늦게 시작했지만 충분히 행복
김건식(79·대치면 이화리) 할머니는 청양읍복지회관 학습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건식 할머니는 열 살 때 야학에서 한글을 처음 접했지만 공부는 계속할 수 없었다. 그러다 5년 전에야 다시 연필을 잡았단다.
“일하며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죠. 20여 년 전 남편이 떠난 후는 책임감에 더 바쁘게 산 것 같고요. 그러면서도 글 모르는 것이 내내 서러웠어요. 그러다 다른 곳에서 한글교육을 한다는 소릴 들었고, 이장에게 개설해 달라고 요청해 시작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 좋아서 잠도 안 오더군요. 이름만 겨우 쓰다 글씨를 알아가니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았죠.”
이런 설렘을 뒤로하고 교육 시작 1년여 후 이화리 학습장이 없어졌고, 건식 할머니는 고민 끝에 그때부터 버스를 타고 읍 복지회관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벌써 4년이나 됐다.
“일하다 버스 시간이 임박해지면 급하게 가느라 밥을 굶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도 공부가 좋아 배고픈 줄 모르고 다니며 열심히 했고 초등학력인정반 졸업도 했습니다. 글씨 예쁘게 쓴다고 상도 5번이나 탔고요. 방송국에도 간 적이 있는데, 아나운서가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운전면허 따는 것이라 했더니, 내년에는 차 한 대 구입해 끌고 오라더군요. ‘꼬부랑 할머니’라는 시를 썼는데, 선생이 액자로 만들어 줘서 집에 걸어놨죠. 그랬더니 오가는 사람마다 칭찬도 해 주고요. 한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꿈이나 꿨겠어요.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다 하다가도, 늦었어도 시작해서 행복하다 생각하며 삽니다.”
▲ 김건식 할머니가 공들여 쓴 글씨가 적힌 공책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칭찬받으니 주춤했던 흥미가 ‘솔솔’
사실 건식 할머니는 본인이 직접 학습장 개설을 요청하고 공부를 시작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시작 후 잠깐 동안 농사 등 생계를 챙기느라 자주 결석을 하게 되고, 때문에 잠시 학습에 흥미를 잃어 버렸었다. 결국 읽기는 가능했지만, 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었다. 이에 교육사는 흥미를 되찾아 주기 위해 학습자들과 함께 일기를 작성해 교환하는 방법을 사용, 틀린 글자와 문장의 흐름은 고쳐주고 잘 쓴 것은 칭찬해 줬다.
이후 건식 할머니의 학습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고, 아무리 바빠도 꼬부랑길을 30분 이상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읍내에서 20분 정도를 걸어 복지회관 학습장에서 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열정은 각종 글쓰기 대회에 출전해 5번의 상을 타는 것으로 연결됐다.
“답답하게 살다가 공부 시작하니 온 세상을 다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없던 자신감도 생기고요. 그래서 항상 행복하다고 말하고, 감사하다고 말을 합니다. 옛날에는 농협이나 면사무소만 가면 또 어떻게 그리나 했죠. 하지만 이젠 자신 있죠. 아이들이 일 놓고 공부만 하라네요. 차츰 그렇게 해 보려고요.”
매주 3번씩 버스를 타야하니 차비도 만만치 않았다는 건식 할머니. 건강 또한 예전 같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이화리에서 청양읍내까지 오가며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할 수 있다면 뭐든 다하고 싶어
복지회관에는 누가 오든 말든 묵묵히 글씨 쓰기에 열중인 차복례(82·벽천리) 할머니도 있다.
복례 할머니는 소일거리로 집에서 직접 묵을 쒀, 단골들에게 판매한 후 전동차를 타고 공부하러 올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다. 힘들다면서 묵 쑤는 일은 그만두라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부와 소일거리를 계속하고 있단다.
이외에도 많은 어른들이 매주 세 번씩 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나이 먹었다고 못할 것이 뭐 있냐,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하고 싶다”면서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다.
▲ 주변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 삼매경에 빠진 이옥우 할머니.
새로운 삶, 세상과 소통하도록 연결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문해교육사는 이은우(49) 씨다. 교육사 2기로 2009년부터 시작해 9년째 어른들에게 한글을 지도하고 있다.
서울서 생활하다 남편을 따라 16년 전 내려온 그는 초등학생 자녀를 학교에 보낸 후의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고 싶어 교육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은 다른 곳에서 이어 8년째 읍 복지회관에서 월·수·금요일 오전 일반반, 오후에는 초등학력인정반 지도를 하고 있다. 화·목요일에는 학당리 학습장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복지회관은 읍내 뿐 아니라 화성, 남양 등 곳곳 어른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연령, 살아온 이야기 등 모두가 다양하단다. 또 학습자들은 복지회관을 학교라 생각하고 이씨를 ‘처음이자 마지막 선생’이라고 불러준단다.
“항상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고 불러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고 부끄럽죠.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도 생기고요. 사실 교육사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잘하려고만 했었어요. 하루하루 꽉 채워드려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죠. 그러다보니 부담감은 크고 소통은 부족해지더군요. 그래서 방법을 바꿔 수업에 더해 어르신들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딸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시간을 함께 하려 노력했습니다. 제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어르신들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조심했고요.”
교육사는 단순히 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새로운 삶,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못 배운 설움과 가슴에 품고 살아온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 가난 때문에 하지 못했던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어른들 앞에 서는 이유라고도 말한다.
▲ 이은우 교육사가 차복례 할머니의 글을 지도해 주고 있다.
배움의 열정은 누구보다 강하다
▲ 청양읍복지회관 학습장 어른들의 수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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