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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일곱에 시작한 대학생활 “너무 재밌어”

우리의 이웃 -청양군 비봉면 용천리 이인희 씨

2016.10.04(화) 17:48:44관리자(ladysk@hanmail.net)

예순일곱에 시작한 대학생활 “너무 재밌어” 사진


오늘 소개할 우리의 이웃은 평생을 누구보다 바쁘고 알차게 살아온 사람이다.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특히 올해에는 대학교에 입학해 손자뻘인 학생들과 함께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청양군 비봉면 용천리 이인희(67) 씨를 만나본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 입어
그는 비봉면 양사리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딸로서는 맏인 그는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떠났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께서 농사꾼이셨는데 농토가 많지 않았어요. 또 옛날만 해도 아들이 우선일 때여서 저도 초등학교만 마치고 도시로 가 일을 했죠. 객지에서 고생 많이 했고, 그러다 결혼 후 1976년에 고향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있네요. 남편은 사업차 해외에 자주 나갔었어요. 그래서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자고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는 이렇게 고향으로 와 농사를 시작했지만 오래지 않아 포기했다. 힘들어서다. 특히 귀향 다음해 세상을 떠난 부친을 대신해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남편을 도와 가정도 이끌어 가야했는데, 농사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뜨면 일하고 집에 오면 밤이었죠. 예초기질, 농약 주기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어요. 배추도 뽑아 시장에서 팔아봤고요. 그러다 결국 농사를 접고 1993년부터 직장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은 김치공장인 한울농산이었다. 이어 특수내화였는데 문을 닫아 서림유업이라는 벽돌공장으로 옮기게 된다. 1997년 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오래 일하지 못했다. 입사한 해에 5톤 차에 왼쪽발이 깔리는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기 때문이다.

“분쇄골절이 돼서 발목부터 절단한다고 했었죠. 그래도 다행히 절단은 안했고, 다음해에 장애등록만 했습니다. 이후 쪼그려 앉을 수도 없고 많이 불편했죠. 지금도 물론 그렇고요.”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1인 4역
장애를 입은 후에도 그는 더 열심히 생활했다.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지난해 1월부터는 요양보호사를, 올 8월부터는 장애인활동보조 일도 시작했다. 장애인협회청양군지부 회원으로 봉사 활동은 물론 회원들을 위한 후원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2007년 2월부터 2년 동안 군지부장을 맡아 일했고, 현재는 장애인협회충남도협회 여성국장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몸이 불편하다고 앉아있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일을 찾아 교육을 받았고, 시간을 쪼개 일을 하고 있죠. 틈틈이 저처럼 장애를 입은 회원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체에 가입해 활동도 시작했고요. 그렇다보니 바쁘게 살아지더군요.”

특히 그는 이렇게 바쁘게 일하면서도, 어려운 형편 탓에 포기했던 공부도 틈틈이 했다. 그 결과 2012년 8월 중졸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다음해에 방송통신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올해에는 충남도립대학교 자치행정학과(야간)에 합격하고 과대표라는 책임까지 맡게 됐다.  

“학원은 못가고 대신 문제집으로 공부했죠. 쉽지는 안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많이 도와줬고, 또 대학에 입학해서는 손자뻘 되는 같은 과 학생들이 저의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사실 그는 검정고시를 포기할 뻔 했다. 시험을 앞두었던 2012년 4월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병간호와 공부를 병행했다.
 

“음식도 못 삼키고 대소변도 스스로 못해서 호스로 연결해 영양분을 보충하고 대소변도 빼내곤 했죠. 2년 여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고, 지금은 집에서 요양 중이에요. 다행히 기능이 좋아졌고, 요즘은 비록 미음이지만 준비만 해 놓으면 스스로 먹을 수 있어요. 대소변은 아직 호스를 이용해야 하지만요. 이만큼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일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아이들도 고생 많았어요.”

예순일곱에 시작한 대학생활 “너무 재밌어” 사진


긍정의 마음으로 항상 열심히
그는 마음을 비우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한단다. 힘들 때 또 사람이다 보니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 화가 결국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시골 올 때 아무것도 없었고, 열심히 일해야 했죠. 지금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아이들 잘 성장해 줬고, 남편도 조금씩 좋아지니 행복한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저도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니까요. 제가 꽃을 참 좋아해요. 조경학과에 가고 싶을 정도였죠. 힘들어도 꽃밭 매는 것은 즐거우니까요. 앞으로 꽃과 함께 노후를 보내는 것이 꿈입니다.”

 

그는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아침 5시 30분이면 기상해 저녁 10시까지 쉼 없이 일한다.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하고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란다.

그는 1981년 운전면허를 땄다. 덕분에 이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는 것 같단다. 한식, 중식, 양식, 올 여름 일식요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외에도 청양굴렁쇠볼링클럽 총무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굴렁쇠는 2013년 창단한 장애인들의 생활체육 친목단체다. 올해 열린 제22회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 볼링 여자개인전 일반부 1위 등 매년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요. 그렇다보니 항상 뭔가를 바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힘들다고 생각했으면 못했겠지만, 저는 바쁜 것이 좋아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바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또 지면을 빌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어려운 형편에도 잘 자라줬고,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큰 힘이 돼 주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각자 일 열심히 하면서 잘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부지런함이 느껴졌던 이인희 씨는 남편 심승일(70)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오늘도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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