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속의 추사고택
2016.07.19(화) 22:36:28찌삐소녀(tpfpsk1379@naver.com)
7월의 추사 고택은 녹음속에서 깊어가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앞에 우뚝 서 있는 솟을대문이 높은 이유는 조선 시대에 대감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높게 만들어졌습니다. 대문 앞에서 큰소리로 "이리 오너라" 외치고 고택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추사 고택은 300년 전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 대왕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는 바람에 영조에게서 하사받은 부지에 당시 충남 54개의 고을에서 한 칸씩 기부를 받아 처음에는 54칸으로 지었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보수작업을 하는 바람에 34칸으로 줄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추사 고택의 사랑채는 우측 맞배지붕과 좌측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건축된 전형적인 조선 시대 양반가의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사랑채에서 추사 김정희 증조부와 아버지 김노경께서 책을 읽고 시를 읊고 손님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채 나무기둥에는 추사 김정희가 추사체로 써내려간 주련이 걸려 있습니다.
추사고택 사랑채 방 내부를 들여다보니까 조선 시대 선비들이 호롱불을 밝히며 글을 읽었던 책상과 서적이 있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방석과 병풍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추사 고택의 안채는 아녀자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추사 고택 사랑채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에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에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 그림이 있습니다. 우측에는 추사 김정희가 차를 정성들여 만들어 보내준 답례로 친구 황제에게 예서체로 써준 '죽로지실'이 있습니다. 죽로지실(竹爐支室)은 다실이름으로 '차를 끓이는 대나무 화로(죽로)가 있는 방'이라는 뜻이 입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처럼 쓴 支와 지붕 아래에 큰 방이 있는 것처럼 쓴 室을 보면 마치 글씨가 그림처럼 보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중국 서한 시대의 예서에서 필법을 체득하신 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사체'를 제주 유배 기간에 완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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